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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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美 ‘백신특허 면제’ 선언… 독자개발·생산 기회로 삼아야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통큰 결정
국제사회 신속한 합의도출 관건
‘백신허브’ 구축에 적극 나서야
사진=AFP연합뉴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어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특허) 면제 선언과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중심으로 관련 논의의 진전이 예상되는 것은 우리에게 긍정적 요인”이라며 “국내 백신 개발 독려와 백신 허브국가 도약 기반을 구축하는 데는 강력한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2개 기업이 하반기에 백신개발 임상 3상에 들어갈 수 있다며 해외사례처럼 비교임상 방식의 지원을 요청해 가이드라인을 6월까지 마련,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정부가 백신특허 면제에 대비, 재정·정책 지원책을 신속히 마련하는 건 바람직하다.

백신특허 면제는 백신 가뭄을 겪는 나라들에는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저개발국가에 자국산 백신을 제공하며 외교 공세를 펼치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미국이 맞불을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더라도 의미가 가볍지 않다. 향후 백신의 일시적 특허 유예가 현실화하면 백신 생산기술과 시설을 갖춘 우리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같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기반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백신 독자 기술을 개발하고 주요 생산기지가 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효소 등 원자재·부자재의 충분한 확보에 한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미 정부가 자국 이익보다 보편적 인류애를 우선하는 통큰 결단을 내렸지만 WTO 차원의 최종 합의에 이르는 길은 산 넘어 산이다. 164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데 다국적 제약사들이 있는 유럽연합(EU), 영국, 스위스, 일본 등이 반대하고 있다. 화이자, 모더나 등 백신 개발사의 반발은 최대 난관이다. “지재권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막대한 돈을 들여 백신 개발에 나서겠느냐”는 이들의 항변은 타당하다. 이기주의적 행태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문제가 아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지식재산권은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위기 상황이다. 저소득 국가의 백신 가뭄이 해소되지 않으면 코로나19 종식은 기대할 수 없다. 개별 기업과 국가의 이해보다 세계인의 보편적 건강을 우선해야 할 시점이다. 지재권 유예로 피해를 보게 될 제약사들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백신 특허권을 규정한 TRIPS(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에도 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소를 위해 지재권 보호를 유예할 경우 보상해줘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 않은가.

합의안 도출 시간을 감안하면 11월 30일~12월 3일 WTO 장관회의에서 최종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국제사회가 더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미국과 EU가 WTO의 신속한 결정과 제약사 설득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다. 백신특허가 풀려도 국내 기업의 백신 생산까지는 최소한 1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상반기 1300만명 백신 접종과 11월 집단면역 형성 목표 달성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