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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소원수리' 홍수에 곤혹스런 군… 휴대전화는 무죄다 [박수찬의 軍]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되면서 군 내 부조리가 쉽게 외부에 노출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팔로워가 14만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계정에 육군과 국방부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휴가 후 코로나19 예방차원서 격리된 군인에 대한 부실급식, 코로나19 과잉 방역, 가혹행위를 비롯한 군 내 부조리들이 익명 제보로 육대전 계정에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지난해 7월부터 전면 허용된 병사 휴대전화 사용이 이같은 추세를 활성화했다는 관측이다.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가 7일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육군의 다수를 차지하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를 군 당국이 정확히 이해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진 첨부한 ‘디지털 소원수리’ 쏟아져, 휴대전화 ‘불똥’

 

육대전에 제보가 쏟아지는 것은 모바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병사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SNS로 외부에 알리면, 불특정 다수에 빠르게 퍼진다. 부실한 식단을 담은 사진 1장은 백 마디 말보다 더 강한 전달력을 갖는다.

 

문제가 공개되면 추가 사례가 더해지고, 여론의 공분이 확산하면 군도 방관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일부 지휘관은 보안 등을 이유로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대전 계정에는 일부 부대에서 격리 장병의 휴대전화 사용을 통제했다는 게시물이 눈에 띤다.

 

페이스북 계정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는 다양한 군 내 문제가 올라오고 있다.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캡쳐

이에 “밥을 제대로 주면 병사들이 사진을 찍었겠느냐” “군대 밥이 보안을 요구하는 군사기밀이냐”는 비판도 많다. “작전기밀을 오픈 채팅방에 올린 간부는 경고를 받고, 밥 사진 제보한 병사는 징계냐”는 반발도 크다.

 

문제가 잇따르자 국방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부승찬 대변인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휴대전화가 열린 병영을 만들어가는 도구이자 장병 개개인의 복지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도구가 되도록 지속해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실급식과 과잉방역 대책도 내놨다. 7일 국방부는 △코로나19 예방차원에서 격리된 장병에게 일반 장병과 같은 급식을 제공하고 △노후 격리시설을 수리하며 △훈련병에 대한 인권침해 요소를 없애고 △익명이 보장되는 휴대전화 앱 기반 신고 채널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육군 병사가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가족과 안부를 나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부하들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소통해야

 

하지만 이같은 방침이 일선 부대에서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일선 간부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육대전 계정에는 배식 논란이 터진 한 부대에서 “간부들이 ‘이런 거를 제보하면 너희만 힘들어진다’고 한다”는 말이 올라와 있다. 

 

기자가 육군 병사로 복무했던 2000년대 초 부대 간부들에게 들었던 말과 똑같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제보한 사람을 탓하는 인식에는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리더십이 MZ 세대 병사들에게 통할까. 디지털에 익숙한 MZ 세대는 모바일을 주로 사용한다. 사람과의 대면보다는 문자나 채팅 등 비대면 소통을 선호한다. 불공정과 불합리에 민감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적극적이다.

 

지난달 23일 강원 홍천군 육군 11사단에서 푸드트럭을 마련해 장병들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육군 11사단 제공

MZ 세대의 특성을 군 조직과 고위간부들이 이해하고 그에 맞게 인식을 전환해 대응했다면, 병사 휴대전화 사용을 통제하자거나 “제보하면 너희만 힘들어진다”는 발언을 할 수 있었겠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소통방식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 메시지에 익숙한 MZ 세대 병사들에게 국방헬프콜이나 병영생활상담관 상담, 지휘관 보고 등의 기존 방법은 한계가 있다.  

 

참모총장부터 대대장에 이르기까지 MZ 세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인식을 전환, 적절한 소통방식을 찾는 것이 급선무인 이유다. 

 

◆자정능력 상실했나…갈등 폭발 우려도

 

조직 내 문제가 외부로 노출되는 일이 많은 것은 그 조직의 자정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병사들의 SNS폭로에 직면한 육군도 마찬가지다.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면 병사들이 SNS에 폭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담없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수평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MZ 세대는 상명하복으로 대표되는 수직적 사고의 전형인 군 조직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문제를 제기해도 이를 군 조직과 간부들이 신속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인식의 변화도 없다면 병사들은 SNS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3일 오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에서 입영장병들이 입소하고 있다. 논산=뉴스1

이같은 일이 반복되면 육사와 비(非)육사 출신 간의 갈등 외에 영관급과 위관급 장교, 간부와 병사, 장교와 부사관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 불신과 내부 소통 부재로 이어져 군 조직을 약화시킨다. 

 

군 소식통은 “영관 장교들은 ‘위관급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위관 장교들은 영관급을 ‘꼰대’라고 보는 시각이 과거보다 늘었다”며 소통 부족에 따른 계급별, 세대별 갈등 악화를 우려했다. 

 

일부 육군 주임원사가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에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을 제소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육군의 수장인 참모총장이 부하들로부터 인권위에 제소당한 것은 전례가 없다.

 

남 총장은 이 무렵 주임원사들과 가진 화상회의에서 “나이 어린 장교가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반말로 명령을 지시했을 때 왜 반말로 하냐고 접근하는 것은 군대 문화에 있어서는 안 된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존칭 쓰는 문화, 그것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언급해 제소를 당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국방부가 휴대전화 앱 기반 신고 채널을 신설해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익명성을 강조해도 군 채널로 신고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8기 대한민국 급식피복 모니터링단 관계자들이 6군지단을 방문, 격리 장병용 도시락을 직접 준비해 시식하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군은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지닌 세대가 한 울타리 안에 있다. MZ 세대를 구성하는 병사와 초급 간부, 기성세대인 고위간부들이 한솥밥을 먹는다. 

 

군대의 특성과 맞는 수직적 지시와 사고로 성공을 거둔 기성세대와 달리 여러 사람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거둔 성과에 익숙한 MZ 세대에게 기성세대의 수직적 지시나 사고는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고위간부에 있다. MZ 세대인 병사나 초급 간부들이 ‘내 의견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면서 지휘관의 결정을 받아들이게 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수직직 리더십을 수평적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3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소재 해군 군수사령부 소모도 생활관을 찾아 코로나19 방역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수평적 리더십이 군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수평적 문화와 리더십에서도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변함이 없다.

 

SNS를 통한 부실급식과 코로나19 과잉방역 폭로는 군의 소통과 융화, 자정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계기였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4일 대구 육군 제5군수지원사령부를 방문, 격리장병용 도시락 준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일선 고위간부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좋은 제도도 무용지물이다. 리더십과 소통 등에서의 혁신을 토대로 한 융화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닌 혁신과 인화(人和: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함)다. 인화가 이뤄지지 않은 군대는 내부에서 무너진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