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타볼까?”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2년 전 만 13세였던 A군은 잠금장치가 풀린 채 길가에 세워져 있던 ‘따릉이(서울시의 공공자전거)’를 발견했다. ‘따릉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했던 A군은 무심코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았다. 몇분 동안 수백m를 달린 뒤 다시 그 자리에 갖다 놨지만, 얼마 뒤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따릉이 무단 사용으로 도난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경찰은 A군이 자전거를 훔치려는 목적은 없었다고 판단하고, ‘사용절도(단순히 일시 사용할 목적으로 타인의 재물을 사용하는 행위)’라는 비교적 가벼운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A군은 이 일로 법원 신세를 져야 했다. A군과 같은 촉법소년(만 10∼13세)은 경찰에서 사건을 종결할 수 없고 무조건 법원 소년부에 송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미한 사건의 경우 재판을 하지 않지만, 판사의 훈계를 받아야 훈방이 가능하다. A군에게는 판사 앞에 서는 것 자체가 큰 공포로 다가왔다. 그의 부모 역시 이런 경험이 A군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법원을 들락거린다’는 소문이 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해야 했다.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 국내 소년법의 제정 목적이다. 소년법은 처벌보다는 교화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촉법소년을 법원에 의무 송치하도록 하는 규정이 오히려 과잉처벌과 낙인효과를 낳아 소년법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미한 사건의 경우 만 14세 이상 피의자는 훈방조치가 가능하지만 촉법소년은 불가능해 오히려 촉법소년에게 더 가혹하다는 지적이다.
17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촉법소년보다 나이가 많은 범죄소년(만 14∼18세)의 경우 경찰·검찰 단계에서 훈방돼 법원에 가지 않는 비율은 매년 50% 안팎이다. 그러나 비슷하게 경미한 범죄를 저질러도 14세 미만이라면 경찰 단계에서 훈방이 불가능하다.
경찰에 따르면 대부분의 촉법소년 범죄는 A군 처럼 경미한 수준이다. 지난달에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아이스크림 막대로 서울시장 후보의 벽보를 훼손한 중학생 B(13)군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당시 이 소식이 알려지자 “아이가 장난삼아 한 행동으로 법원에 가는 것은 가혹하다”며 B군을 선처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경찰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불처분 의견’을 달아 송치하는 것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비난 여론이 높았지만 송치를 안 할 수는 없어서 처벌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표시했다”고 설명했다.
일선서 경찰들도 난감할 때가 많다.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서 근무하는 경찰은 “어른인 나도 판사 앞에 서면 압박감을 느끼는데 초등학생들은 어떻겠나”라며 “아무리 경미해도 송치해야 하니 경찰 입장에서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찰 단계에서의 훈방조치가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인숙 소년법 전문 변호사(청년 법률사무소)는 “촉법소년이 저지른 중범죄 사례만 부각되다 보니 엄벌하자는 여론이 많지만 실제로는 경미한 사건이 대다수”라며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한이 확대됐으니 경찰 선에서 촉법소년 훈방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선도 프로그램이 확충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경찰 훈방권을 넓히되 경찰에서도 양질의 선도 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민·이지안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