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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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자유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탄생 시킨 섬 [박윤정의 칼리메라 그리스!]

⑧ 에기나
아테네서 27㎞ 거리… 크루즈선 타고 GO~
막강한 해상전력 갖췄던 고대 도시국가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 거리’는
소설 속 북적이는 어촌 풍경 떠올려
하늘·바다 배경 아페아신전 멋진 풍광
피레우스. 아테네 서쪽 약 12km 거리에 있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항구. 항구에 정박해 있는 거대한 크루즈 배들이 장관을 이룬다.
잠시 아테네를 떠났을 뿐인데 다시 돌아온 아테네는 내 집처럼 반갑다. 교통체증마저도 익숙해진 탓인지 호텔로 향하는 도로에서 지체하는 시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디에서든 고개를 들면 아크로폴리스가 보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신전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지친 몸으로 도착하여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아테네에서 또 다른 밤을 청한다.

 

지난 며칠간, 아테네를 중심으로 본토 유적들을 방문하며 일정을 보냈다. 때때로 기나긴 차량 이동이 지겹기도 했지만 어느덧 시공간이 다른 유적지에서 시간여행을 즐겼다. 버스에서 느꼈던 뻐근함은 돌무덤 한켠에 조용히 묻고 또 다른 목적지로 떠났다. 버스 여행을 마치고 크루즈에 오르기 전, 짐정리도 할 겸 지친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쉬기로 했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피부에 닿는 상쾌한 바람을 맞으니 바람결 따라 실려가고 싶은 생각이 스친다. 크루즈 여행을 떠나기 전, 가벼운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섬에 다녀오기로 마음을 바꿨다. 높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등을 떠미는 듯하다.

아테네에서 27㎞ 떨어진 에기나섬은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섬이다. 단체여행 상품 중 그리스에 머무는 시간이 부족하여 크레타나 산토리니 그리고 미코노스같이 멀리 떨어진 섬을 갈 수 없을 경우 대신 들르는 섬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30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 중의 하나이지만 에기나섬은 고대에 독립된 도시국가로서 한때 아테네의 맞수로 강력한 해상전력을 갖춘,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섬이다.

 

에기나섬을 가기 위해서 피레우스(Pireaus)항구로 향한다. 아테네 서쪽 약 12㎞ 거리에 있는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크루즈선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주위로 훨씬 작아 보이는 중소형 크루즈선들이 여러 척 정박해 있다. 에기나로 관광객을 안내하기 위한 배는 100명 정도 승선가능한 작은 쾌속선이다.

드디어 지중해이다. 배는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빛깔의 바다 품에 안겨 출렁인다. 따스하고도 시원한 바람이 살포시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수면에서 반짝이는 빛의 너울이 눈을 부시게 한다. 현기증에 휘청거리느라 잠시 시간을 놓쳤더니 어느덧 아테네를 등지고 에게해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푸른 바다를 가르는 뱃머리에는 그리스 국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하얀 구름에 걸려 있는 국기는 지금의 풍경을 담은 작은 그림 같다. 바닷바람을 맞선 지 얼마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에기나섬이 보인다. 햇살 모아 담은 섬 풍경이 반짝인다.

면적 87㎢인 에기나섬은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비슷하고 울릉도보다 크다. 해발 531m의 오로스 산이 있는 화산섬이다. 북서쪽 비옥한 평지에서는 포도와 올리브, 피스타치오가 생산되고 해변에서는 관광객들과 낚시꾼들이 붐빈다.

배에서 내려 마주한 건물들은 사진에서 보던 흰색과 파란색이 아닌 자연스러운 색상들의 일반 건물들이다. 항구 주변 거리에는 버스와 택시, 그리고 수많은 식당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바다를 옆에 두고 남쪽 제방을 따라 걷는다. 큰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그 혼잡함은 사라진다. 항구에서 나와 식당가로 이어지는 거리는 그리스 대표적인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거리이다. 그의 역작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곳이 바로 이곳 에기나섬이란다.

에기나섬 지중해 식당. 에기나항구와 가까운 거리에 식당과 쇼핑 거리가 있다. 섬이라서 그런지 더욱 신선한 지중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거리에 나른한 사람들의 표정과 열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상인들, 골목 귀퉁이에 앉아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소설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담장 너머 탐스러운 탱자나무,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들이 뒤엉킨 이 모습이 이들의 일상이 아닐는지 상상해 보며 걸음을 옮긴다. 엿보는 일상의 풍경 속에 문어를 말리고 있는 모습은 우리네 어촌 풍경처럼 느껴진다. 정겨운 모습을 지나치지 못하고 문어 요리와 해산물 파스타로 지중해를 즐겨본다. 덩어리째 나온 커다란 빵을 보며 조금은 투박한 듯 무심하지만 신선한 식재료가 주는 건강한 그리스 음식으로 여행의 맛을 더한다.

아페아신전. 에기나섬 동쪽 언덕 위에 있는 아페아신전은 총 34개 기둥 중 24개가 남아 있어 그리스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신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정기 버스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려니 레스토랑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나 보다. 섬 서쪽 항구에서 신전이 있는 동쪽으로 향하기 위해 결국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한다.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30분 정도 오르니 아페아신전이다. 아페아여신은 이곳에서 섬긴 신으로, 잘 알려진 신은 아니지만 신전은 낯설지 않았다. 아테네 파르테논신전과 비슷해 보인다. 파르테논신전보다 규모는 작지만 더 일찍 만들어졌다고 한다. 총 34개 기둥 중 무려 24개가 남아 있어 보존이 잘된 온전한 형태이다. 이 멋진 건축물은 언덕 위에서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멋진 풍광을 선물해 준다. 마치 자연을 청중으로 둔 바람과 바다 연주의 교향곡 같다.

 

지도상에서 아테네 파르테논신전, 아테네 남쪽 수니온곶에 위치한 포세이돈신전, 그리고 이 아페아신전을 직선으로 이으면 정삼각형에 가까운 이등변삼각형으로 위치한다고 한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기원전 500년경에 세워진 이곳은 파르테논, 포세이돈과 함께 그리스 3대 신전이라는 기념비적이고 영광스러운 별칭을 가지고 있다. 멋진 건축물을 바라보며 바다와 바람이 선물하는 교향곡을 즐긴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