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명’ VS ‘2명’.
올해 서울대에 합격한 서울지역 일반고 출신 학생 중 강남구 소재 학교 출신이 도봉구 소재 학교 출신의 50배가 넘었다. 강남구의 학생이 도봉구보다 3배가량 많은 점을 고려하면 강남구 출신 서울대 합격률은 압도적이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로 확대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지역 일반고 출신 서울대 합격자 10명 중 4명은 강남 3구 출신이었다.
18일 종로학원하늘교육이 공개한 ‘2021학년도 서울 자치구별 일반고 서울대 합격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에 합격한 서울지역 일반고 졸업생은 518명이다. 이 중 43.4%(225명)는 강남 3구 소재 고교 출신이었다. 강남 3구에 노원·양천구를 더한 ‘교육특구’ 소재 고교 출신 서울대 합격자는 315명에 달했다. 이들 5개 구 소재 고교 출신이 서울대 합격자의 60.8%를 차지한 셈이다.
반면 도봉구(2명), 성동·강북·중구(각 3명), 구로·영등포구(각 4명), 중랑·마포구(각 5명) 등은 서울대 합격자가 한 자릿수를 기록해 강남구(107명), 서초구(73명), 노원구(48명), 송파구(45명) 등과 간극이 컸다. 이 같은 격차는 현행 대학 입시제도에서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 외에 교육환경이나 부모의 경제적 능력 등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교육은 그동안 사회적 이동성을 키우는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계층 대물림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부르는 상위권 대학, 고소득 전문직종을 배출하는 의대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충원 방식이 더 열린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SKY’ 의대 신입생 4명 중 3명은 고소득층 출신이었고, 로스쿨의 경우 10명 중 6명이 소득분위 9∼10분위의 고소득층 자녀였다. 최상위 대학의 최상위 학과,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향하는 관문에 이미 고소득층 부모를 둔 자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만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노력만으로 의사나 법조인이 되기는 더 힘들어졌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유발한 ‘K자형 경제 양극화’가 이 같은 교육 양극화를 고착시킬 가능성이 커졌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중간층이 사라진 모래시계형 사회가 되면 ‘끈끈한 천장(상위계층이 떨어지지 않는 현상)’과 ‘끈끈한 바닥(하위계층이 올라갈 수 없는 현상)’이 만들어지면서 사회가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이동성 없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순 없다”며 “코로나19로 도움이 절실해진 학생들을 발굴하고 양극화 완화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소득층이 점령한 명문대·인기 학과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장학금 통계를 살펴보면 대학의 ‘계층 사다리’ 기능이 무너진 현실을 실감할 수 있다.
‘SKY’ 신입생 중 고소득층 자녀 비율은 매년 증가 추세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신입생 중 부모의 월소득 인정금액이 9분위(949만원) 이상인 고소득 가정 출신은 2017년 41.4%에서 2018년 51.4%, 2019년 53.3%를 거쳐 지난해 55.1%까지 늘었다. 서울대는 고소득 가정 출신 신입생 비율이 2017년 43.4%에서 지난해 62.9%로 3년 새 19.5%포인트 높아졌다.
의대와 로스쿨은 고소득층 자녀 비율이 특히 높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0월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의대·로스쿨 신입생 소득분위별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신입생의 52.4%가 고소득층이었고, 전국 25개 로스쿨은 51.4%가 고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SKY 대학은 의대 신입생 중 고소득층 74.1%, 로스쿨은 58.3%에 달했다.
국제사회와 비교해 봤을 때도 한국의 교육 형평성이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황성수 한국직업능력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PISA를 활용한 국가별·시점별 교육 형평성 측정방안 연구’ 논문을 보면 ‘성적 상위 25% 학생 중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하위 25%인 학생 비율’인 ‘개천용 비율’은 2006년 13.5%에서 2018년 11.7%로 하락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기반으로 비교한 결과 같은 시기 미국은 개천용 비율이 7.8%에서 8.9%로, OECD 평균 역시 9.3%에서 9.9%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부모의 자산뿐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와 문화적 자본까지 대물림되는 현상이 교육격차를 강화한다고 분석했다. 정영현 교육정책디자인 연구소 정책실장은 “요즘 한국 사회는 부모가 중상층 이상이면 경제력 외에 사회적 네트워크까지 다 물려받아 부의 대물림이 강화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정보와 인적네트워크까지 자녀에게 대물림돼 재력 있는 부모의 자식이 시험 등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는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정환경과 부모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 인맥과 정보에 앞선 아이들이 입시에서도 유리한 건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교육 사다리’의 붕괴… 커지는 좌절감
전통적으로 계층 상승 통로였던 ‘대학 입시’가 계층 대물림의 수단으로 변하면서 청년들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유층 자녀를 동경하고 가난한 집 자식인 ‘흙수저’의 처지를 자조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흙수저들은 명문대에 들어가서도 좌절감을 호소한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아요.” ‘SKY’ 대학 중 한 곳에 재학 중인 대학생 김모(24)씨는 외고 출신인 대학 동기들과 대화할 때마다 약간의 이질감을 느낀다. 경기도 외곽의 고등학교에서 홀로 이 대학에 진학한 김씨와 달리 외고 출신 학생들은 같은 과에만도 한 학교 출신이 여러 명씩 있다. 대부분 집안의 경제력과 부모님 직업도 좋은 편이다. 고교 시절 학교에서 형성된 인맥이 대학으로 이어지는 건 물론 부모님들끼리도 아는 사이라 친구 부모님이 단기 인턴 자리를 구해줬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지방 대학을 졸업해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씨의 부모님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열심히 해 상위권 대학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자신은 뒤처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김씨는 “부모님은 로스쿨 진학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 외고 출신인 동기는 로스쿨 진학 계획을 부모님이 세워줬다고 해 충격을 받았다”며 “나 혼자 힘으로는 잘사는 집 친구들만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단순히 가진 기회가 다르다는 차원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최소한 같은 길을 보고 있어야 기회의 유무를 논할 수 있는데 지금은 속한 계층에 따라 시야가 아예 달라진다”며 “계층 내부의 정보와 관계망 등이 상위계층 내에서 ‘끼리끼리’ 공유되는 현상이 심화해 하위계층 청년들의 박탈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 사다리 복원을 위해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공교육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양극화와 정보·기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식은 공교육 안에서 모두가 최상의 경험을 같이하게 하는 것”이라며 “방과후학교 등 우수한 공립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경제력 격차에 따른 환경적 차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지원·이정한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