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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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서 하나 된 여야… ‘임을 위한 행진곡’도 함께 불렀다

5·18 41주년 기념식에 '총집결'
與, 지도부·대권 주자들 광주행
명확한 진상 규명·처벌 등 강조
국민의힘, 유가족에 거듭 사과
송영길·김기현 ‘주먹밥 조찬’도
文 “광주정신, 미얀마 희망되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왼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오른쪽) 등 여야 지도부가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41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광주=뉴스1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인 18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인사들이 광주에 총집결했다.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 당 지도부와 대권 주자들이 총출동한 더불어민주당은 5·18 정신 계승과 명확한 진상 규명 등을 강조했고, 국민의힘도 5·18 유가족들에게 거듭 사죄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등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는 각각 메시지를 통해 5·18의 의미를 되새겼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5·18 관련 대국민 메시지에서 “어제와 오늘에 머물지 않는 오월”이라며 희생자와 유가족, 부상자들을 위로하고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등을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5·18을 기록해 전 세계에 알렸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펜터씨를 기억한다”며 “우리는 오늘 미얀마에서 어제의 광주를 본다. 오월 광주와 힌츠페터의 기자 정신이 미얀마의 희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도 했다.

 

광주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 참석한 김 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시민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한 오월 광주의 정신은 코로나19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너무나 절실하다”며 “오월 정신을 국민 통합의 정신으로 계승해나가자”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그러면서 “아직도 찾지 못한 시신들, 헬기 사격, 발포 책임자 규명 등 밝혀내야 할 진실들이 많다”며 “대한민국은 ‘오월 광주’에 대한 완전한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미얀마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든 부정과 불의, 민주주의를 짓밟는 세력에 저항하는 모든 시민이 광주와 함께 반드시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송영길 대표와 최고위원들 외에도 당내 대선주자들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정세균 전 총리, 김두관·박용진 의원 등이 대거 광주를 찾아 기념식에 참석했다. 특히 송 대표는 국민의힘 김기현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주먹밥 조찬’을 함께 해 눈길을 끌었다. 송 대표는 SNS에 김 권한대행, 국민의힘 강민국 원내대변인과 식당에 앉아 대화하는 사진을 올리며 “정치적 입장이 조금씩 달라 자주 다투는 것처럼 보이는 여야 지도부지만 그래도 오늘, 의미 있는 행사에 동행한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지”라고 소회를 털어놨다. 주먹밥은 5·18 당시 노점상인 등이 시민군에게 건넨 음식으로, 오월 정신과 연대·나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도 5·18 정신에 대한 언급이 쏟아져나왔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5·18 민주영령의 뜻을 이어받아 정의와 공정이 바로 서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며 “민주 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도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어기구 의원은 “발포 명령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책임자로 의심되는 전두환씨는 아직도 호화 주택에서 경호를 받고 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내 일각에선 이틀 전 5·18 관련 메시지를 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이광재 의원은 “5·18 이념을 확실히 계승가힉 위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자”고 역설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완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겸 원내대표 권한대행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41주년 정부 기념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 권한대행은 기념식에서 박자에 맞춰 힘차게 팔을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그동안 5·18 기념식에서 이념성향에 따라 일부 참석자가 제창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등 ‘한 지붕 두 가족’의 모습을 보였으나 보수정당 사령탑이 솔선수범해 제창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 한 유가족은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열린 기념식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못해 너무 아쉬웠다”며 “하지만 올해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힘껏 제창해 가슴이 뭉클했다”고 털어놨다. 김 권한대행은 기념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5·18 유가족들을 향해 “사죄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올린다”며 거듭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이처럼 국민의힘의 달라진 모습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띄운 ‘서진(西進)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드러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정권 교체를 위해선 호남 민심을 사로잡는 게 필수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국민의힘에선 올해 5·18 관련 망언이 나오지 않았으며, 의원들과 당 지도부가 잇따라 광주를 찾는 등 적극적인 ‘호남 구애’에 나서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 대표 선거에서도 컷오프 통과자의 첫 합동연설회를 광주에서 열 계획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 보수정당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성일종 비상대책위원과 정운천 국민통합위원장이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의 5·18 추모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이날 5·18 기념식은 여느 해와 달리 소란이나 다툼 없이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뤄졌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기념식장 참석인원이 99명으로 제한돼 유가족 대부분이 먼 발치에서 기념식을 지켜보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올해는 시민들도 인원을 제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념식장을 찾지 않아 가장 간소하게 치러진 기념식으로 기록됐다. 엄숙했던 기념식장과는 달리 식장 밖에선 일부 단체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면서 한동안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공법단체 설립을 앞두고 있는 5·18 단체 간 일부 회원이 서로 고성을 주고 받는 소동을 빚었다. 여순사건 유가족들은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재한 미얀마인 중 일부가 이날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5·18 서울기념식에 참석해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김주영·이도형 기자, 광주=한현묵 기자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