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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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형식적 공정마저 깬 文정부가 ‘윤석열 현상’ 만들어”

‘尹지지 모임’ 창립 기념 토론회 기조발제 나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 창립 기념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21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법적·형식적 공정의 상징”이라며 “윤 전 총장을 포함한 모든 대선 주자들은 실질적 공정을 이루기 위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공정과 상식) 창립 기념 토론회에 기조발제자로 나선 진 전 교수는 “윤 전 총장에 대해 제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윤석열 현상’으로 나타나는 공정에 대한 욕망의 실체가 무엇인지 짚어보고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점들이 어느 지점인지 말씀드리겠다”며 이 같이 말했다. 공정과 상식은 대학 교수과 법조인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인 윤 전 총장 지지단체다. 정용상 동국대 명예교수가 상임대표를 맡았고, 김종욱 전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황희만 전 MBC 부사장 등 3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윤 전 총장과 직접적인 연락을 주고 받고 있진 않지만 추후 그가 정계 진출을 선언한 뒤 씽크탱크로 기능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단체다.

 

진 전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가능성과 한계’를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한국 사회는 한 세기 안에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넘어오면서 이데올로기(이념)의 종언을 고했다”며 “그런데도 아직까지 보수진영은 ‘박정희 서사’에, 진보진영은 ‘민주화 서사’에 고착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민주화 세대는 과거엔 저항세력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이 됐고 세습까지 하려 한다”며 “이걸 전적으로 보여준 게 ‘조국 사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 전 교수는 “4·7 재보궐선거에서 2030 세대가 큰 주목을 받았는데, 이 세대는 산업화로 대표되는 박정희 서사나 민주화 서사 모두에서 자유롭다”며 “요즘 젊은이들은 조직적 투쟁이 아닌 개인 간 경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문재인정부 들어 불거졌던 ‘인천국제공항 사태’라든지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의 ‘남북 단일팀 논란’, 최근 ‘고려대학교 세종 캠퍼스 차별 논란’ 등을 예로 들었다. 진 전 교수는 “2030 세대에게 공정은 ‘공정한 경쟁’을 뜻한다”며 “나 혼자 해결해볼 테니 공정한 경쟁만 보장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30 세대가 주식과 가상화폐에 매달리는 현상 역시 부의 축적과 신분 상승을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방문해 반도체 물리학자인 고 강대원 박사 흉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러면서도 진 전 교수는 “젊은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공정을 능력주의와 실력주의로 생각하는 건데, 이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약속했지만 기회 자체가 불평등한데 과정이 어떻게 공정하고 결과가 어떻게 정의롭겠느냐”고 반박했다. 이어 “저는 능력주의의 폐해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진 전 교수는 지금 시대의 화두가 공정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주목받는 이유도 공정이 하나의 시대정신이 됐기 때문”이라며 “(유력한 여권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성장과 공정’을 이야기하는 등 숟가락 얹었더라. 국민의 60%는 아직도 성장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데 조국 사태 때 한 마디도 안 한 그가 이런 식의 포퓰리즘 정책을 늘 들고나온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진 전 교수는 “문재인정부 들어 법적·형식적 공정과 절차적 정당성마저 깨졌는데 이걸 견제하고 칼을 이쪽 저쪽 공정하게 댔기 때문에 윤 전 총장이 공정의 상징이 됐다”며 “이제는 경제적 불공정, 실질적 불공정이 해결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의 계층이동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역설한 진 전 교수는 (아직 정계 진출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윤 전 총장을 포함한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을 모색해나가는 것”이라며 “지금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패배에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인을 볼 수 없고 정치 모리배만 남아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날 토론회 말미에 정리 발언에서는 “제가 정부를 많이 비판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비판은 상대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진짜 욕망을 읽어내서 정제된 언어로, 정책으로 공식화하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진 전 교수는 윤 전 총장이 현 정부 들어 법적·형식적 공정이 무너진 덕분에 대권 후보 반열에 올랐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조국 사태 이면에 깔려 있던 사회적 분노를 제대로 보고 제대로 응답할 때 진짜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통합의 정치가 필요하다”며 “이념적으로 접근하면 대립만 남는데,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낼 수 있는 게 우리 시대가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자질”이라고도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