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22와 F-35로 대표되는 스텔스기를 뛰어넘는 차세대 전투기 개발이 가속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은 17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라팔과 타이푼을 대체할 6세대 전투기인 미래전투항공시스템(FCAS) 개발을 위한 후속 단계를 공개했다.
FCAS는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어진 2027년 비행 시연기를 출고, 2040년쯤 실전배치가 이뤄질 예정이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의 핵심 방산업체들이 모두 참여한다.
영국은 스웨덴, 이탈리아와 더불어 템페스트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고, 미국은 F-22의 뒤를 이을 차세대 전투기(NGAD) 시험비행을 진행했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도 6세대 전투기 개발에 한창이다. 한국이 6세대 전투기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몸집 키우기·속도전…6세대 전투기 등장 빨라진다
당초 FCAS는 프랑스 주도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프랑스는 자국과 더불어 유럽 방산분야 2대 강국인 영국과 합작 개발을 추진했으나 2017년 독일로 선회했다. 2019년에는 스페인이 합류했다.
독자적인 전투기 개발 능력을 지닌 프랑스가 FCAS 프로젝트를 공동개발 형태로 진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라팔 전투기의 전례를 의식했다는 평가다.
프랑스는 1970년대 중반 영국 등과 함께 전투기 개발을 추진했으나 자국 항공우주산업 기반을 보호하고자 독자 개발로 선회했다. 그 결과물이 라팔이다.
이를 통해 ‘100% 프랑스 제작’을 달성했지만, 프랑스 국내 수요만으로는 라팔 제작사인 닷소와 협력업체의 연구개발 및 생산 역량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는 대당 단가 상승과 구매량 축소로 이어졌다.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해외 주문이 늘어나면서 전투기 손익분기점(300대)를 넘겼지만, 이를 달성하는데 20여년이 걸렸다.
반면 FCAS는 프랑스 공군과 해군 항공대를 비롯해 독일, 스페인 공군에 배치될 예정이다. 개발 단계부터 충분한 물량을 확보한 셈이다. 공동개발을 통해 예산 조달도 더 용이해졌다.
라팔과 타이푼을 구매한 국가의 잠재적 수요까지 감안하면 400~800대를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 고가의 첨단 장비가 다수 탑재되는 FCAS의 대당 단가도 낮출 수 있다.
FCAS는 프랑스 닷소와 에어버스가 전체적인 개발을 담당한다. 현재까지 공개된 모형과 상상도에 따르면, 기수는 F-22와 유사하고 공기흡입구는 F-35와 비슷하다. 꼬리날개는 미국 F-22와의 경쟁에서 탈락한 YF-23을 연상케 한다.
동체 하단에 내부무장창 두 개를 더해 고도의 스텔스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외형을 갖췄다. 인공지능(AI) 전투체계와 드론, 레이저 등의 운용능력도 추가된다.
엔진은 프랑스 사프랑과 독일 MTU, 스페인 IPT가 함께 맡는다. 라팔의 M88 엔진보다 작지만, 추력은 더 강한 엔진 개발을 목표로 한다. 터빈은 1800도의 고온을 견디도록 제작될 예정인데, 사프랑은 이와 관련된 핵심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다만 2027년까지 만들 실증기에는 라팔 M88 엔진을 탑재한다. 이를 통해 차세대 엔진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FCAS의 핵심 기술 검증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레이더와 센서는 프랑스 탈레스, 독일 헨솔트, 스페인 인드라가 공동개발한다. 탈레스는 라팔 RBE2 다기능위상배열(AESA)레이더를 개발했으며, 헨솔트와 인드라는 타이푼에 탑재할 미래 AESA 레이더를 만들고 있다. 항공무장은 유럽 MBDA가 담당한다.
영국은 스웨덴, 이탈리아와 템페스트 전투기 개발을 진행중이다. 영국 BAE시스템스를 중심으로 롤스로이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스웨덴 사브, 유럽 MBDA가 참여한다.
미국은 극비리에 차세대 전투기 실증기를 띄웠다. 윌 로퍼 미 공군 차관보는 지난해 미 공군협회 컨퍼런스에서 “차세대 전투기 실증기가 수차례 비행하며 기존 항공기들의 기록을 여러 개 깼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은 2030년대 중반을 목표로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진행중이며, 러시아는 미그와 수호이 설계국이 함께 개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6세대 전투기에 관심 기울여야
한국은 지난달 KF-21 ‘보라매’ 시제1호기 출고식을 통해 KF-21 전투기를 선보였다. 내년에 시험비행을 거쳐 2026년 개발을 완료, 2028년 추가무장시험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KF-21은 우리나라가 처음 개발한 전투기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2030년대 이후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6세대 전투기를 대적하기는 어렵다. 항공우주산업 기술 측면에서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항공우주산업 기반이 탄탄한 선진국들은 거듭된 기술 개발을 통해 전투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미국이 일찍부터 차세대 전투기 실증기 시험비행에 나선 것처럼 당초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6세대 전투기의 실용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군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방부 국방정보본부 전경배 중령은 11일 공군이 주최한 공군력 컨퍼런스에서 “2035년 한국 공군은 F-35 40여 대를 제외한 나머지 전투기는 4.5세대 이하 전력”이라며 “주변국들이 6세대 전투기를 실전배치하면 공중우세 확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서 2030년에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완료한다고 해도 한국은 빨라야 2049년 이후에 미국산 6세대 전투기를 들여올 수 있을 것이며, 또는 그 이후에도 도입이 불가능할 수 있다”며 범국가적 지원을 통해 6세대 전투기 개념과 핵심교리를 만드는 등의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이 6세대 전투기를 한국에 제때 판매할 가능성은 낮다. 미국은 F-22 수출을 강력하게 차단했으며,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는 F-35를 판매했다. F-22 생산 초기 관심을 보였던 한국이 스텔스기인 F-35를 도입하기까지는 20여 년이 걸렸다.
미국에서 6세대 전투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선 KF-21처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방법이다. KF-21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연구 역량과 인력 등을 계속 활용해 항공우주산업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 KF-21 관련 기술이 사장될 위험도 크게 줄어든다.
문제는 비용이다.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의 FCAS 개발비는 15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의 6세대 전투기 F-3 개발비는 10조5000억 원이다.
KF-21 개발에 8조8000억 원을 투입한 상황에서 이보다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될 6세대 전투기 개발에 곧바로 착수하기는 쉽지 않다. 개발에 차질이 생기면 비용 규모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유럽의 6세대 전투기 개발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FCAS는 높은 스텔스 성능과 유무인 복합체계, 장거리 탐지장비, 동체 특수재질, 인공지능에 기반한 ‘전투 클라우드’라는 통신 네트워크 등을 갖출 예정이다. 유인기 전술교리와 무인기 운용교리를 통합한 공동전술교리 개발도 추진된다.
템페스트도 강력한 스텔스 성능과 네트워크 시스템을 갖추고 극초음속 무기나 군집드론, 레이저를 운용할 수 있다. 조종석은 계기판 대신 증강현실로 가상의 조종석을 만들어 기체 상황과 정보를 조종사의 헬멧에 시현하게 된다. 전자전 능력은 기존 타이푼보다 크게 강화된다.
FCAS와 템페스트는 한국 공군이 미래에 필요로 하는 기술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공동개발 파트너를 확대해 생산 물량과 개발비를 늘리려고 시도하는 것도 공통된 특성이다.
공동개발국으로 참여해 FCAS나 템페스트를 도입할 수도 있고, 참여한 대가로 확보한 기술을 토대로 KF-21 개량이나 후속 기종 개발 등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국과 일본은 2030년대 이후 6세대 전투기를 실전배치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제공권을 지키려면 우리나라도 6세대 전투기 도입을 위한 기반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어 군 당국의 향후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