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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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만난 양정철, 윤석열에 손짓하는 김종인… 잠룡 띄우기 나섰나 [심층기획-차기 대선 킹메이커 분석]

文과 동고동락한 양정철
대선 낙선과 재기, 집권과정 함께 겪어
최근 미국서 돌아와 이재명 만나 ‘눈길’
친문적자보다 될 사람 밀어줄 것 관측
이해찬도 ‘강물론’ 언급 동조 나선 듯

여야 오간 실력자 김종인
철새 정치인 비판 불구 일관성 뚜렷 평
소신 펼 수 있는 권한 있는 곳만 옮겨가
尹에 잇따라 신호 보내고 제3지대행 제시
반응 없자 김동연 지목하며 尹 자극도
‘킹메이커, 타인을 권좌에 올릴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정계의 실력자.’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재 정치권의 주요 킹메이커로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꼽힌다. 이들의 행보와 발언 하나하나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야권에선 김 전 위원장이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을 때마다 대선주자 간 지형이 흔들리고 있다. 주요 주자들이 견고한 진용을 구축한 여권보다는 ‘무주공산’에 가까운 야권에서 킹메이커의 입김이 더욱 거센 상황이다. 아직 지지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 책사들의 향후 행보에 대권 구도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 책사’ 김종인… “사람을 잘못 봤다”

김 전 위원장의 실력은 경제민주화 등 국가운영 철학과 이를 수십년간 현실 정치에 접목하려 한 일관성에서 나온다는 평가가 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지냈다가 4년 뒤에 국민의힘을 이끄는 등 여야를 오간 탓에 ‘철새 정치인’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김 전 위원장과 가까운 사람들은 “그 어떤 정치인보다 일관성이 뚜렷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경제민주화는 김 전 위원장의 브랜드가 됐다. 경제민주화는 일각에서 오해하는 사회주의적 개념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양극화와 불균형을 방치하기보다는 선제적 대응 개념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2012년 대선 사회 양극화 해소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로 수렴돼 대선주자 간 선점 경쟁이 치열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김 전 위원장을 캠프에 영입하며 경제민주화 주자라는 이미지를 선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의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박근혜가 전화를 걸어 ‘선생님이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말미에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고 말했다.

진보·보수 정부를 가르지 않고 ‘러브콜’을 받은 김 전 위원장은 ‘어느 정당이냐’가 아니라 본인의 소신을 펼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지는 자리에만 옮겨가 변화를 시도했다.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에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안보 불안감이 높아졌을 때 “북한 궤멸”을 언급하며 당내 반발을 사기도 했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때는 보수 중진들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가 눈물의 무릎 사과를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방문해 반도체 물리학자인 고(故) 강대원 박사 흉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이 주목한 주자들… 윤석열·김동연

김 전 위원장의 이러한 스타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손잡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만 한 책사가 없지만 적당히 지혜를 빌려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윤 전 총장으로부터 4·7 재보선 3일 후인 지난달 10일 전화를 받았다”며 윤 전 총장이 자신에게 연락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언제 한번 시간 되면 만나보자 그랬는데, 현재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해서인지 만남은 좀 피해야겠다는 연락이 (다시) 와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과 관련해 “백조(윤 전 총장)가 오리밭(국민의힘)에 가면 오리가 돼버린다”며 제3지대행을 제시하고 “5월 중순쯤 정치판에 나설 것 같다”고도 했다.

최근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만나고, 김동연 전 부총리를 차기 대선주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를 놓고 ‘김동연 띄우기’를 시작한 것 아니냐는 시각과 함께 퇴임 후 잠행 중인 윤 전 총장에게 신호를 보냈지만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자 자극을 가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국민의힘에서 김 전 위원장과 호흡을 맞췄던 사람들은 4·7 재보선 승리를 이끈 뒤 당을 떠난 김 전 위원장을 향해 “현실 정치에서 이루고자 하는 남은 소명이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책사’ 양정철… 물밑 행보 주목

여권에선 양 전 원장의 행보가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그는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객원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최근 귀국해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난 4일 만났다. 양측은 “개인적 만남이었다”며 선을 그었지만 이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양 전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책사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2010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낼 때 찾아가 정치 참여 의사를 물었다. 당시 문 이사장은 ‘대선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양 전 원장의 독려에 “그렇게 현실성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문 대통령의 정계진출부터 2012년 대선 낙선과 재기, 집권 성공 과정을 함께했다. 지난해 총선에선 민주연구원장을 맡아 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뉴시스

이 때문에 민주당 대선 경선을 코앞에 두고 돌아온 킹메이커의 귀환에 이목이 쏠린다. ‘친문(친문재인) 적자’인 제3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부터 오는 9월 민주당 경선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친문 주자를 고집하지 않고 될 만한 사람을 밀어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지사에게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는 최근 ‘강물론’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이 들어와야 배도 띄울 수 있다’는 것으로 지지도 낮은 친문 주자를 억지로 내세워 혼란을 일으키기보다는 물이 들어온 사람을 확실히 띄워주자는 의미다. 민주당 일각에는 4·7 재보선에서 참패한 만큼 친문 적자로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양 전 원장도 이처럼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재집권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이다.

친문 후보로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꼽힌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불출마 의사를 강하게 밝히고 있다. 유 이사장은 지난 19일 한 방송에서 민주당 대권 주자 중 노무현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할 것 같은 후보가 누구인지에 대해 “다 훌륭한 분들”이라고 답하며 자신의 정치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