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잔혹한 상흔 곳곳에… 학대 사망 아동 ‘디지털 장례’ 치른다

온라인상 피해사진 무분별 유포… 유족들 두번 상처
어린이집 학대로 숨진 성민이
솜방망이 처벌로 14년째 언급
부푼 배·멍자국 등 참혹한 사진
모자이크 없이 300만건 떠다녀

학대방지협회, 사진 삭제 추진
아동 존엄성 고려 자정 목소리

“아이들을 끔찍한 모습이 아닌 예쁜 모습으로만 기억해주세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가 ‘울산 성민이 사건’으로 알려진 아동학대 피해자의 ‘디지털 장례’를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 당시의 참혹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온라인상에 많이 퍼져 유족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학대 피해자들의 디지털 장례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26일 성민이의 시신 사진 등 일부 참혹한 사진을 인터넷에서 삭제하는 디지털 장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장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 남아 있는 고인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이다.

성민이는 2007년 5월 울산시 북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숨졌다. 사인은 외부 충격에 의한 소장파열과 이로 인한 복막염이었다. 사망 당시 팔과 다리가 앙상하게 마른 아이는 복부만 부풀어 있었고, 얼굴과 몸 곳곳에 멍과 상처가 있었다. 당시 성민이는 부모가 이혼해 24시간 아이를 봐주는 어린이집에서 지냈다. 검찰은 어린이집 원장 부부를 상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그들이 학대를 부인하면서 업무상 과실치사죄만 적용돼 원장 채모씨는 징역 1년6개월, 원장 남편 남모씨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형 확정 이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후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성민이 사건이 언급됐다. 2018년에는 성민이 죽음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올라와 41만명이 동의했다. 방송을 통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온라인에는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성민이 사망 당시의 사진을 올리는 이들이 늘어났다. 현재 각종 인터넷커뮤니티와 SNS, 유튜브 등에는 모자이크조차 되지 않은 성민이의 사진이 떠돌고 있다. 사진 속에는 성민이의 부푼 배와 눈가의 까만 멍, 온몸이 붉게 물든 맨 몸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아동학대방지협회에 따르면 이 같은 사진과 영상은 약 300만건으로 파악된다.

이 협회가 사진 삭제에 나서는 것은 유족의 고통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유족은 과거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기 위해 적나라한 사진을 공개했지만, 이후 가족의 사진까지 퍼지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폭행을 목격했던 성민이의 형(당시 6세) 역시 트라우마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민이 사건을 보도했던 한 방송사도 해당 프로그램 다시보기와 관련 사진을 삭제한 바 있다.

공혜정 대표는 “끔찍한 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만행은 당연히 잊지 않아야 하지만 처참한 사진이 있어야 국민적 공분이 계속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은 끔찍한 사진이 아닌 예쁜 모습으로 기억되고, 학대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협회 측은 유족의 정확한 의사를 확인하고 있다. 유족이 동의할 경우 디지털 장례 비용은 전액 협회가 부담한다는 방침이다. 디지털 장례 추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모금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모금에 참여한 한 시민은 “성민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속상했는데 이렇게라도 뭔가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시민은 “아이 이름을 검색해 나오는 사진들을 보면 나 역시 마음이 아픈데 유족의 마음고생은 더 심할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온라인상에는 성민이 외에도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피해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이모(36)씨는 “아동학대 사건의 잔혹성을 알리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끔찍한 피해 사진들이 무분별하게 퍼지는 것은 피해 아동의 존엄성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것 같다”며 “특히 과거 사건들의 경우 어느 정도 자정작용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