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어느 형제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사연이 알려져 미얀마 국민은 물론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군인인 형은 유혈진압 공로로 승진한 반면 민주화 운동가인 동생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쿠데타로 축출된 민간정권과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이 국제사회에서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세계보건총회(WHA) 연례회의는 일단 양측을 다 배제하기로 했다.
26일(현지시간) 미얀마 현지 매체에 따르면 오랫동안 반(反)독재 민주화운동을 해온 꼬 소 모 흘라잉(53)이 이틀 전 사망했다. 그는 지난 22일 바고 지역의 자웅 투 마을에서 다른 주민들과 함께 체포됐다. 해당 지역에 잠입한 군부의 밀정이 그를 당국에 밀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꼬 소 모 흘라잉의 직접적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인들은 그가 군사정권을 반대한 전력 탓에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체포 당시 꼬 소 모 흘라잉은 군경이 휘두른 소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아 심하게 다쳤다고 한다. 이틀 뒤 그의 아내는 군경으로부터 전화로 “남편이 숨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꼬 소 모 흘라잉의 친구들은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굳은 정치적 신념 때문에 고문을 당해 숨진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미얀마인들의 탄식을 자아낸 건 다름아닌 고인의 형이다. 꼬 소 모 흘라잉의 친형 딴 흘라잉은 현역 군인으로 중장 계급장을 단 장성이다. 그는 지난 2월 1일 쿠데타 이후 내무부 차관 겸 경찰청장으로 가파르게 승진했다. 현지 매체들은 “쿠데타 이후 군경이 미얀마 국민을 상대로 자행한 잔인한 유혈진압의 원흉 중 한 명이 바로 딴 흘라잉 중장”이라며 그를 유혈진압을 주도한 군부 핵심 인사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동생 꼬 소 모 흘라잉은 악명이 높은 형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며 “전 생애를 통해 시위 참여부터 학생 무장단체 가입 등에 이르기까지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미얀마 시민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전날까지 군경의 폭력에 사망한 이는 무려 820여명에 이른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들은 미얀마를 올해 WHA에서 아예 배제하기로 했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WHA는 WHO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올해 열리는 WHA는 제74차 연례회의에 해당한다.
회의를 앞두고 쿠데타로 축출된 민간정부와 군사정권이 둘 다 자기네가 미얀마의 합법적 대표라며 WHA 참석 의사를 통보했다. 하지만 각국 대표단의 자격을 확인하는 업무를 담당한 WHO의 한 위원회는 “유엔 총회에서 관련 지침이 내려올 때까지 WHA에서 해당 결정을 미루겠다”고 밝혔다. WHO 회원국들은 사실상 만장일치로 이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올해 제74차 WHA에서는 민정과 군정 중 누구도 미얀마를 대표할 수 없게 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