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때문에 들어앉아서 혼자 이 궁리를 하면서 내가 죽을라고도 생각했어요. 내가 왜 이래야 되노. 나 혼자, 내가 한다고 (문제 해결이) 되지도 않고 갈 건데. 그러나 내가 먼저 간 할머니들한테 할 말이 있어야 될 건데, (할머니들이) ‘너 여태까지 있다가 오면서 너 왜 해결도 못 하고 왔냐’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14명 중 1명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이용수(93) 할머니는 지난 24일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빨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지만, 세월이 날 기다려주겠나. 요즘 좀 외롭다”며 이렇게 말했다.
1992년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한 이 할머니는 제대로 된 사과와 진상규명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일본을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CJ는 국가 간 분쟁을 법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유엔의 사법기관으로, 한·일 양국이 합의해야 재판이 열린다.
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무법천지일 때 일본이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가고, 죽이고 했는데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고 죄가 없다고 하는 걸 그냥 볼 수가 없었다”면서 “(일본의 만행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 ICJ까지 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너희(일본)가 잘했는지 우리가 잘못했는지, 우리가 잘했는지 너희가 잘못했는지를 ICJ에 가서 밝히자는 것”이라면서 “일본과 한국의 젊은 세대, 또 자라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역사는 알려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확실한, 진실된 사죄를 한다면, 죄는 밉지만 사람은 용서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제는 완전한 해결을 지어 일본과 원수지지 않고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내면서 이 역사를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쓴 손편지도 보냈다. 이 할머니는 “(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이 역사 문제만은 해결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사람이 먼저다’라는 걸 실천하는 것이 문 대통령인 만큼, 이 역사도 먼저라고 생각하고 해결해주리라 믿는다”고 촉구했다. 이어 “문 대통령도 피해자 나라의 대통령인 만큼,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면서 “하늘나라 할머니들한테 가서 ‘문 대통령이 이리 해결하셨습니다’ 할 수 있도록 꼭 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해 5월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전 정의연 이사장) 등을 향해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했던 것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 그리고 올바른 ‘위안부 운동’을 위한 마음에서였다. 이 할머니는 “모금을 하는데, 도대체 모금을 해서 뭘 하는지 (몰랐다)”면서 “데모(수요시위)를 하면 초등학교 학생들이 오는데, 학생들이 돼지(저금통) 털어서 가져온 걸 받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요시위 등을) 그치는 게 아니고, 데모를 하더라도 고생시켜가면서, 없는 사람과 아이들 용돈까지 털어가면서 하는 것은 안 해도 되지 않는가”라며 앞으로의 위안부 운동은 한·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육에 초점을 두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교육관을 마련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교육하고,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점차 올바른 역사를 알려 나가는 방식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정의연과 관련해서는 “어쨌든 간에 (1년간) 많이 변했다”면서 “상대가 거기(정의연)니까 ‘그 사람들 만나지 마라’가 아니다. 의논도 해가면서 해야지, 그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럴 게 아니고 만나서 좋은 얘기도 해주고 좋게 지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보조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 의원에 대해선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팠다”면서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 할머니는 국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서 나아가 다른 국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을 표했다. 이 할머니는 “저희들뿐만 아니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피해자들 명예회복도 해주고 싶다”면서 “그래서 끝까지, ICJ까지 (위안부 문제를) 끌고 가려 하는데 여러분도 협조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못할 경우, 후세대에 ‘문제 해결’이란 과제를 남기게 될 것에 대한 걱정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다 죽기만 바란다”면서 “역사의 산증인이 있어도 (일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여러분한테 또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든지 여러분한테 (이 문제가) 돌아가지 않기 위해 결사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확실히 밝혀서 아닌 것은 아니고, 맞는 것은 맞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제일 바라는 점이 뭐냐면, 위안부 문제 해결 싹 해갖고 여러분한테 제가 떳떳하게 해결했다고 나설 수 있는 그 날이 제일 소원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도 마음 놓고 살지.”
이 할머니의 말끝에는 비극적 역사가 할퀴고 간 흔적만큼 가늠할 수 없이 깊은 간절함이 맺혀 있었다.
대구=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