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세계 각국 정부 수반들의 해외순방 등 정상외교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중심에는 취임과 동시에 “외교가 돌아왔다,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워싱턴으로 초청해 대면 정상회담의 시동을 건 바이든 대통령이 이제 미국 밖으로 나가 유럽 동맹국들과의 전통적 우호를 다진다. 또 중국과 더불어 미국을 위협하는 대표적 세력인 러시아를 상대로 탐색전을 벌인다.
백악관은 28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다음 달 11∼13일 영국 콘월에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의 해외순방은 올해 1월 20일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스가 일본 총리와 미·일 정상회담을, 최근 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각각 했지만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두 정상을 미국으로 초청해 이뤄졌다.
G7은 미국 외에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이 회원국인데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다. 백악관은 “이번 순방에서는 우리 동맹 관계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며, 우리의 동맹 및 다자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할 수 있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가 강조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의 미국 우선주의 및 동맹 경시 정책으로 훼손된 전통적 우방국들과의 관계 개선이 핵심 목표라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G7 회의 기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과 개별 양자회담을 할 예정이다. 올해 95세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도 따로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여왕은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영·미관계가 더욱 중요해졌음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G7 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6월 1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가 열린다. 바이든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인데 같은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미국과 사이가 껄끄러운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만남이 눈길을 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터키의 인권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의 전신 오스만 제국에 의한 아르메니아인 학대를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규정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나토 정상회의 기간 바이든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열기로 한 사실을 공개하며 “(미·터키 정상회담이) 새로운 시대의 전조라고 믿는다”는 말로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미·러 정상회담을 하는 것으로 유럽 순방의 대미를 장식한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탄압을 들어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 푸틴 대통령은 흑인 차별, 1945년 일본에의 원자폭탄 투하 등을 거론하며 “진짜 살인자는 미국”이라고 비난하는 등 두 정상은 최근 험악한 말다툼을 벌였다. 여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등 이웃 나라들을 군사력으로 위협하는 상황도 미국의 우려를 사고 있어 두 정상의 첫 대면 분위기가 어떨지 주목된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