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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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기업인은 장식품이 아니다

“한국에서 기업하면 바보” 한탄
부른 文 정권의 ‘反시장 反기업’
이젠 서구 경제인들 코웃음칠
기자회견 ‘기업인 쇼’까지 하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미 정상의 기자회견장.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다. “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는데, 자리에 계시면 일어나 주시지요.” 정장 차림의 기업인이 우르르 일어난다. 최태원 SK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감옥살이를 면했다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그 자리에 섰을까. 문재인 대통령,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기업인은 왜 그곳에 갔을까. 빤하다. 청와대 요구가 있었을 테니. 왜 오라고 했을까. 기업인을 앞세워 ‘싸늘한’ 바이든 정부를 돌려세우고 싶었던 걸까. ‘산업보국’. 우리 기업사를 관통하는 화두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해할 만도 하다.

강호원 논설위원

그렇다 해도 씁쓸한 풍경이다. 왜?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이조스…. 그런 미국 기업인이라면 그런 곳에 가 도열을 했을까.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유럽·일본 기업인도 다르지 않다. 부르지도, 가지도 않는다. 왜? 정치인과 경제인의 영역을 구분하니. 자신의 사회적인 역할에 충실하면 그뿐이다. 정치권력 앞에 기업인을 줄 세울 생각은 결코 하지 못한다. 그것이 21세기 자유시장경제를 지배하는 시대 의식이다.

그 진풍경은 무슨 뜻을 담은 걸까. 후진적인 우리 사회의 밑바닥이 들여다보인다. ‘관치 망령’이 들끓는 나라. 기업인은 끊임없이 권력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나라. ‘얼치기 시장경제’가 판치고 권력자는 기업인을 장식품쯤으로 여긴다. 그러기에 그것은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미국인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한참 멀었군….” 그 결과는 무엇일까. 애플보다 강한 제조 인프라를 갖추고도 주가는 한참 저평가됐다는 삼성전자. 정부와 한 몸이라는 오해를 불러 반덤핑 보복까지 받는다. 모두가 얼치기 시장경제 리스크가 부른 재앙이다. 삼성만 그럴까. ‘사류 정치’는 경제를 좀먹는다.

더욱 씁쓸한 것은 기업인을 앞세운 바로 그 정치권력이 반시장·반기업 이념으로 똘똘 뭉쳐 기업 숨통을 틀어막고 경제를 고사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 4년. 수십년에 걸친 규제개혁 노력은 산산이 허물어졌다. 당·정·청이 만들어내는 악성 규제에. 주주권을 박탈하고, 기업 기밀을 경쟁사에 공개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법률(상법·공정거래법)을 예사로 안다. 조그마한 잘못에도 기업인은 감옥에 가야 하고(중대재해 처벌법), 감당하기 힘든 비용 부담(화학물질관리법)에 기업은 문을 닫는다. ‘엉터리’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모자라 또 세금 폭탄까지 퍼붓는다.

기업이 꽃피도록 하는 시장경제 정책?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대통령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악성 규제를 쏟아내면서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무엇으로? 빚과 세금으로.

“한국에서 기업하면 바보”라고 한다. 기업은 해외로 탈출하고, 일자리는 증발했다. 경제는 침몰하고 있다. 모두가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번진 사태다. 성장률을 높인다며 ‘빚낸’ 돈을 또 퍼붓는다. 나라가 사상 초유의 빚 무덤에 오른 것은 그 때문이다. 지난 70년간 누적된 나랏빚(국가채무)은 660조원.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늘린 나랏빚은 그에 버금가는 421조원에 달한다. 그 빚은 ‘이생망’ 한탄에 젖은 젊은 세대가 갚아야 한다.

기자회견장에 선 기업인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잘됐다. 어차피 해외로 떠나야 할 판에 불감청고소원”이라고. 4대 그룹의 미국 투자액 44조원. 7만명 이상을 고용할 투자다. 대통령은 그 투자를 자랑거리로 삼아 또 숟가락을 얹었다. 기업을 내쫓는 악성 규제를 만들면서.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에는 은광이 바둑판처럼 많지만 백성의 채굴을 금한다. 은과 옥은 모두 일본에서 들어오고, 또 모두 북경 저자로 빠져나간다.”(은화편) “나무가 마른 뒤에 살피려 한다면 서강의 물을 다 옮겨 부어도 아무 효과가 없다.”(민수편) 백성의 의식을 풍족하게 할 생각은 않고, 가난을 재생산하는 ‘어리석은 조선’을 한탄한 말이다.

기업이 뿌리내릴 토양을 사막으로 만들면서 언제까지 ‘기업인 쇼’를 할 텐가. 기업이 마른 뒤 서강의 물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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