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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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군부 실세, 최규하는 무기력한 대통령”…美 대사관의 5·18 문서 공개

1980년 1월10일부터 그해 8월5일까지의 기록 담아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실상 지도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 등이 담긴 주한 미국대사관의 1980년 문서(14건·53쪽 분량)가 공개됐다. 이 문서는 전두환을 두고 “군부 내에서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presumably playing a central but not necessarily decisive role)”고 평가했다. 반면에 최규하 대통령 등을 두고는 ‘무기력한 대통령과 내각(helpless president and cabinet)’이라고 표현했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실상 지도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 등이 담긴 주한 미국대사관의 1980년 문서가 공개됐다.

 

2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가 공개한 문서(14건·53쪽 분량)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의 12·12 군사 쿠데타 이후인 1980년 1월10일부터 같은해 8월5일까지의 기록을 담았다.

 

문서에는 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로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대사관이 그해 5월18일 0시 전국으로 비상계엄이 확대되기 전날, 본국에 보낸 ‘서울에서의 탄압(Crackdown in seoul)’이라는 제목의 문서는 전두환을 두고 “군부 내에서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presumably playing a central but not necessarily decisive role)”고 평가했다.

 

반면에 최규하 대통령 등을 두고는 ‘무기력한 대통령과 내각(helpless president and cabinet)’이라고 표현했다.

 

이보다 앞서 같은해 1월10일 대사관이 작성한 ‘레스터 울프 미 하원 아태소위원회 위원장과 우리 군 수뇌부 인사들과의 회담’ 문서는 당시 주영복 국방부 장관이 ‘자신은 군부를 통제할 실권이 없다(I have no influence over the army)’고 밝힌 내용을 담았다.

 

12·12 군사 반란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한 군부세력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정부가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에게 경계심을 보이면서도, 실세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정황도 보인다. 문서에서 당시 미 국무부는 “전두환이 이번 만남을 올리브 가지(Olive branch)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그의 높아진 위상을 수용(an acceptance of his inevitable rise)하고 당신(미 대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약속(a promise of future access to you)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아울러 미 정부가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에게 경계심을 보이면서도, 실세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정황도 보인다.

 

미 국무부가 1980년 3월13일에 작성한 문서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전두환 간 면담 내용이 담겼다.

 

국무부는 “전두환이 이번 만남을 올리브 가지(Olive branch)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그의 높아진 위상을 수용(an acceptance of his inevitable rise)하고 당신(미 대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약속(a promise of future access to you)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이번 공개는 5·18 관련 진상규명을 위해 미국 정부의 기밀문서가 필요하다는 시민단체 및 학계의 의견에 따른 우리 정부의 요구를 미국이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정부는 미국에 문서 80건의 공개를 요구했으며, 지난해 43건에 이어 이번에 14건이 공개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나 지휘체계에 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국무부가 아닌 미국 국방부나 한미연합사령부 등 군 기관이 보관하는 문서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이 아직 23건의 문서를 공개하지 않은 것도 정치적 파급력이 큰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나머지 24건의 목록은 미국 입장에서 민감한 대목들로 공개가 유보된 상태로 판단된다”며 “바이든 정부가 전향적 태도를 보여준다면 그 문서도 공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 측이 비밀해제해 전달한 문서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이날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인계 후 기록관 웹사이트에 공개된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