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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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콕족’·1인 가구 증가 등 영향… 반려인 1500만명 시대 ‘빛과 그늘’ [이슈 속으로]

반려가구, 전체 30%… 절반 이상이 수도권
반려동물 혼자 있는 시간 하루 5시간40분
반려인 73%가 양육용 전자제품 등 활용
펫테크 상품 ‘자동 급식·급수기’ 최다 사용

질병 치료비 제외한 양육비 월 14만원
강아지·고양이 함께 키우면 25만원 지출

동물 유기·학대·개물림 사고 덩달아 늘어
2020년 유실·유기동물 13만마리… 비용 267억
보호센터 입소 동물 절반 자연사·안락사
학대 등 동물보호법 위반 10년새 10배 급증

개한테 물려 병원 이송 건수 매년 2000건
정부 ‘기질평가제’ 도입 등 대책 마련 추진

직장인 A(35)씨는 최근 10살 된 반려견 ‘웅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뀐 탓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데다 늦게까지 이어지는 저녁 약속이 없다 보니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집 주변을 산책한다. 휴일에는 반려견을 키우는 다른 친구와 함께 한강공원을 찾는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식당을 찾아 함께 저녁을 먹기도 한다. A씨는 “그간 바빠서 소홀했던 웅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서 좋다”면서 “예전에는 반려동물과 함께할 공간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공간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려인 1500만 시대가 도래했다. 국민 4명 중 1명꼴로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서 반려동물과 여가시간을 보내는 ‘펫콕족’이 늘어난 탓이다. 1인 가구 증가와 소득 증대도 반려인 증가에 한몫을 하고 있다. 반려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키우던 동물을 유기하거나 관리 및 교육 소홀로 사고가 발생하는 등 줄곧 지적돼온 문제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4명 중 1명은 반려인…양육비는 월평균 14만원

4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가구는 604만가구로 전체 가구의 29.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인은 1448만명으로 국민 4명 중 1명꼴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는 통계청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와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등록정보현황, 전국 20세 남녀 2000명을 설문조사(복수응답)한 결과를 집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가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131만가구, 경기·인천이 196만가구로 전체 반려가구의 54.1%(327만가구)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문화 확산과 재택근무 확대 등으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가구의 73.5%가 반려동물을 집에 혼자 두는 경우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8년 84.3% 대비 9.0%포인트 감소한 수치로, 반려동물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반려동물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은 하루 평균 5시간40분으로, 2018년 하루 평균 6시간3분에 비해 소폭 감소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혼자 있는 반려동물을 위해 응답자의 72.8%가 반려동물 양육용 전자제품을 활용하거나, 반려동물 위탁시설에 맡기는 등 별도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답했다.

펫테크(Pet-tech)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펫테크는 반려동물(Pet)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가리킨다. 반려가구의 64.1%는 ‘펫테크 기기를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많이 자주 사용되는 펫테크 기기는 ‘자동 급식기와 자동 급수기’(39.4%)와 ‘홈 CCTV와 카메라’(30.3%), ‘자동 장난감’(26.1%) 순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매달 들어가는 양육비는 평균 14만원 정도로 나타났다. 상해나 질병 치료비를 제외한 사료비, 간식비 등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비용이다. 유형별로 보면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는 월평균 13만원을, 고양이는 이보다 적은 10만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함께 기르는 가구는 월평균 25만원을 양육비로 지출했다.

반려견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령견을 키우는 가정도 늘고 있다. 반려견 양육가구 중 노령견을 기르고 있다고 답한 가구는 19.0%였다. 이들은 대체로 반려견의 나이가 10세를 넘으면 노령견으로 인식했다. 반려견의 노화 따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노령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사료를 교체하거나 영양제를 투여하고, 미끄럼 방지 패드를 설치하는 등 반려견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유기·학대, 개물림 사고 등 관련 문제 여전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물유기나 학대, 개물림 사고 등의 문제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20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구조되거나 보호된 유실·유기동물은 13만401마리다. 전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280개 동물보호센터에서만 파악된 수치다. 역대 최대치였던 전년(13만5791마리) 대비 약 3.9% 감소한 수치이지만, 매년 약 13만마리의 버려지는 동물로 인해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도 상당하다.

실제로 유실·유기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비용을 포함한 운영비용으로 지난해 267억1000만원을 사용했다. 전년(232억원) 대비 15.1% 증가했다. 구조된 유실·유기동물 가운데 약 29.6%가 새로운 보호자에게 분양됐다. 자연사와 안락사 비율은 각각 25.1%, 20.8%로 동물보호센터에 입소된 동물의 절반 이상이 센터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강아지를 차에 매달아 달리거나 길거리에서 강아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동물의 신체를 훼손하는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공유하는 끔찍한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 발생 건수는 2010년 69건에서 2019년 914건으로 10년 새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나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0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려진 유기동물이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난달 22일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에서 풍산개와 사모예드가 섞인 유기견으로 추정되는 개가 50대 주민을 공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일에는 제주 서귀포의 한 마을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던 50대 주민이 갑자기 나타난 갈색 들개에게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사고 발생 닷새 뒤에 잡힌 들개는 목줄이 발견돼 주인이 있다가 야생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가평군에서는 80대 여성이 셰퍼드에게 물려 중상을 입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개물림 사고로 병원에 이송된 환자 건수는 1만1152건으로 매해 2000건 이상이 발생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개 물림 사고 예방 대책을 포함한 ‘2020~24년 동물복지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고려 중인 대책은 ‘기질평가제’ 도입이다. 기질평가제는 위험한 개의 기질(공격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동교정, 안전장치 사용, 안락사 명령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정부 입법 개정안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개물림 사고는) 개들에게 가해지는 일상화된 방치 학대의 결과임을 주목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견주를 찾아 엄벌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외에도 문제의 본질을 면밀히 살펴 참사의 원인을 해결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려견 감정 상태 알 수 있는 스마트기기 눈길

 

반려동물 상품 시장이 진화하고 있다. 반려동물 제품에 최첨단 ICT(정보통신) 기술을 결합한 펫테크 상품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 개최된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 ‘CES 2021’에서 다양한 펫테크 기술들이 소개됐다.

 

반려인들이 가장 흥미로워할 제품은 반려동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스마트기기 ‘펫펄스(PetPuls)’다. 펫펄스는 인공지능(AI) 기술과 내장 마이크를 사용해 반려견의 음성을 해석하고 감정을 읽는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다. 반려견이 목걸이 형식의 펫펄스를 착용하면, 1만마리(50여종)의 반려견으로부터 축적한 음성 데이터를 토대로 짖는 소리를 분석해 제공한다. 빅데이터로 도출된 음성 알고리즘을 통해 반려견의 행복, 불안, 슬픔, 분노, 편안함의 다섯 가지 감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반려동물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데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펫펄스는 국내 스타트업인 ‘너울정보’에서 이번 CES 2021에 처음 선보인 제품으로, 웨어러블 기기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스마트 개목걸이인 ‘왜그즈 프리덤’은 반려견을 잃어버릴 걱정을 덜 수 있다. 왜그즈 프리덤은 실시간 위성항법장치(GPS)가 탑재돼 있어 반려동물 이동 범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주인이 스마트폰을 통해 애완견이 움직일 수 있는 행동반경을 지도에서 지정하면 개목걸이에 달린 청각·초음파 및 진동 보정 기술을 통해 반려동물이 설정된 지역에만 머무를 수 있도록 행동을 제한할 수 있다. 반려동물이 자유롭게 집 안팎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스마트 도어 ‘마이큐(MyQ) 펫포털’도 등장했다. 액세스 제어 솔루션 분야의 선두 기업인 ‘체임벌린 그룹(Chamberlain Group)’이 개발했다. 마이큐 펫포털을 이용하면 내부 및 외부 카메라, 양방향 오디오, 블루투스 기술을 통해 스마트폰 앱에서 반려동물의 행동을 스트리밍되는 영상을 통해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반려동물이 스마트 도어를 통해 집 밖을 나서려 할 때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동으로 문을 열어줄 것인지 설정할 수 있다. 마이큐 펫포털은 혁신성을 인정받아 스마트홈 부문에서 CES 2021 최고의 혁신상을 수상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