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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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빠진 ‘이한열 추모식’… 이한열 母“상호마저 없으니 더 눈물나”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제34주기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1987년 6월9일 군사정권 항거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고(故) 이한열 열사의 34주기 추모식이 9일 모교인 연세대에서 열렸다.

 

연세대 이한열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날 연세대 신촌캠퍼스 한열동산에서 추모식을 열고 이 열사의 뜻을 기리며 추모사와 추모 공연 등을 진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이날 추모식에는 소수 인원만 참석했고 온라인 생중계가 병행됐다.

 

행사에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 박동호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장, 이한열 피격 당시 사진을 촬영했던 로이터 사진기자 정태원 씨 등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전날 국민권익위원회 전수조사에서 농지법 위반 의혹이 드러나 탈당 권고를 받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름이 여러 번 거론됐다.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이 열사의 장례식에서 영정 사진을 들고 행진했던 우 의원은 그간 빠짐없이 이 열사의 추모식에 참석해왔지만 이날 추모식에는 이례적으로 불참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전수조사에서 농지법 위반 의혹이 드러나 전날 탈당 권고를 받은 탓으로 보인다.

 

송영길 대표는 “한열이 하면 우상호가 생각나는데 저 때문에 오늘 (우 의원이) 오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찢어진다”며 “집 한 칸 없이 전세로 살면서 어머니 묘소 하나 만든 것이 국민권익위 조사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밝히고 돌아오라 보낸 제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유족을 대표해 추모제에 참석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역시 “30여년간 한 번도 빠짐 없이 이 자리를 지켜준 우상호가 오늘은 이 자리에 없다”며 “있어야 할 내 아들도 없고 상호마저 없으니 섭섭하고 눈물이 더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 한 칸도 반듯한 것이 없는데 어머니 모시고 싶어서 아무것도 아닌 밭에 묘를 쓴 걸로 우상호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드리고 싶다. 당에서 그렇게 착한 애를 내버려놓고 쇄신을 하니 마니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추모사를 맡은 이지만 연세대 경영대학장은 이 열사가 1986년 12월 직접 쓴 시 ‘한 알의 씨앗이 광야를 불사르다’를 낭독했다. 이 학장은 “이 열사는 문학을 사랑하며 많은 시를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부끄럽지 않게 사는 22살 청년이었다”며 “이 열사의 숭고한 희생과 한알의 밀알이 된 희생정신을 기리고 이 열사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한 알의 씨앗이 돼 더 나은 사람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권익위 전수조사 결과 부동산 불법거래 등 비위 의혹이 드러난 의원 12명 전원에 대해 자진탈당을 권유하기로 결정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의혹 대상에 오른 우상호 의원이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건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한열의 유지를 잇고 승화시키는 게 남겨진 우리의 책임”이라며 “정의와 공정에 대한 질문과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한열 정신이 그 논의의 출발점이자 토대가 되어주리라 감히 믿는다”고 했다.

 

연세대 재학생 대표로 나선 이도엽 학생추모기획단장은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것들이 선배님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희생과 염원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며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삶을 영위하는 한 이한열 선배님을 기억하며 선배님이 걸어온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연세민주동문회는 이날 온라인 추모합창곡을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했다. 이 열사의 생전 글씨체를 복원해 컴퓨터 서체로 만든 ‘이한열체’도 이날 공개됐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