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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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나비서 나온 항균물질… 생물 다양성 가치 보여줘”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가다

붉은점모시나비의 복원
추위 견디도록 돕는 내동결 물질 지녀
먹고 움직이는 애벌레로 한겨울 보내
수차례 시행착오 거치면서 복원 성공

‘신약의 보고’ 가능성
애벌레서 치주염 세균 억제 물질 발견
항염·항암 물질 기대되는 펩타이드도
본격적인 연구 통해 산업화 준비 단계

넘어야 할 과제 뭔가
곤충 관련 연구비 대부분 살충에 쏠려
양봉·양잠 외에는 활용 못하고 사라져
종의 보존 통해 경제적 가치 찾아내야

어머니는 날 낳자마자 돌아가셨다. 홀로 남겨진 난 어머니가 물려주신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난 여름에 태어났지만 영하 20도 한파가 닥치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칼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나의 계절’ 같다. 이제는 알을 깨고 나갈 때다. 바깥의 추위는 내게 불안과 공포가 아닌 기대와 생동감을 준다. 상상해봐라, 인간들아. 코끝 시린 날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고 있는 시원한 기분을. 추운 날 얼어붙은 땅에서 따사로운 햇살에 일광욕을 하면 그렇다. 겨울에 난 여린 기린초 싹은 ‘충생’(벌레 인생) 최고의 이유식이다.

붉은점모시나비의 애벌레 이야기다. 이 애벌레는 만물이 얼어붙는 계절에 생을 시작한다. 보통 11월 말에서 1월 초 알을 까고 나와 3∼4월까지 애벌레로 살고 5월쯤 번데기가 돼 6∼7월에 나비로 변태한다. 이후 길어야 일주일 남짓 동안 나비로 살면서 짝짓기를 해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겨울을 좋아하는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에서 국내 연구진이 치주염 등을 억제하는 항균물질 후보군을 발견했다. 강원 횡성 깊은 곳에 있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멸종위기종인 이 애벌레의 펩타이드를 연구해 항균 효과를 확인했다. 연구소 측은 붉은점모시나비 외에도 수억년을 진화해온 곤충이 가진 막대한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붉은점모시나비가 나부끼고 물장군과 금개구리가 맘놓고 헤엄치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지난 2일 찾았다.

◆겨울을 좋아하는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횡성 기차역에 내린 뒤 좁은 산길을 구불구불 들어가면 나온다. 동심을 자극하는 나비문을 통과하면 곤충도감을 펼쳐놓은 듯한 세계가 벌어진다. 수백 종의 곤충과 양서류뿐 아니라 엉겅퀴 등 일상에서 보기 힘들어진 희귀 식물을 쉽게 볼 수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서식지외 보전기관’다운 풍경이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이 손에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를 올린 다음 깍지를 낀 모습.

연구소 내 생물 중에서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의 호기심을 가장 끈 곤충은 붉은점모시나비다. 이름 그대로 모시 같은 하얀 날개를 나풀거리는 붉은점모시나비는 하얀 날개에 찍힌 빨간 무늬가 독특하다. 한국과 중국·러시아 고지대에서 발견되는 이 나비는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다. 우리나라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했다.

이 소장은 이 나비가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단다. 그러나 수년의 연구에도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죽기만 했다. 이 소장은 “2005년부터 나비를 길렀는데, 살리고 싶어서 연구를 거듭해도 애벌레를 죽이기만 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만물은 겨울에 잠들었다가 봄이면 생동한다. 이 상식에 따라 이 소장도 붉은점모시나비 알이 부화하도록 밤낮으로 따뜻하게 보호했다. 하루는 뜻대로 깨어나지 않는 애벌레에 상심해 알을 방치했다. 추운 겨울이었다. 검은색 애벌레를 발견한 건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 순간 이 소장의 뇌리에 이 애벌레는 추운 곳을 좋아하는 ‘한지성’ 동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후 그가 증식·방사에 성공한 붉은점모시나비는 현재도 강원 삼척과 경북 의성 등 고도가 높고 서늘한 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붉은점모시나비 복원 사례가 소개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글로벌 생물 종 보전 이주 전망 2021’ 표지(왼쪽),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글로벌 생물종 보전 이주 전망 2021’에 실린 붉은점모시나비 복원 사례를 담은 논문 첫 장. 박유빈 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한국의 붉은점모시나비 복원 사업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발간한 ‘글로벌 생물 종 보존 이주 전망 2021’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평가받았다. 이 보고서는 69건의 사례를 ‘매우 성공적’, ‘성공적’, ‘일부 성공’, ‘실패’로 나눴는데 ‘매우 성공적’으로 평가받은 사례는 16건으로 이 중 무척추동물은 붉은점모시나비가 유일했다.

 

◆멸종위기종 ‘신약의 보고’ 되나

365일, 붉은점모시나비의 길지 않은 생애 중 약 190∼220일은 애벌레 상태다. 알 속에 있거나 ‘여름잠’을 자는 기간까지 포함하면 생의 90%를 애벌레로 보낸다. 활발하게 먹고 움직이는 11월에서 3월까지 5개월은 애벌레로서 삶의 핵심이다. 이 소장은 추운 날씨를 좋아하는 이 애벌레에 분명 남다른 특징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구에 본격적으로 골몰한 결과 이 애벌레가 추위를 견디도록 돕는 ‘내동결 물질’을 밝혀냈다. 붉은점모시나비는 알 상태로는 영하 47.2도까지, 애벌레로는 영하 35도까지 살 수 있다.

 

국제학술지 ‘MDPI’에 실린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치주 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을 억제하는 물질 보유했다는 논문 첫 장.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붉은점모시나비의 항균펩타이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 놀라운 점이 있었다.

 

9일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 따르면 애벌레에서 채취한 물질 중 15종의 펩타이드를 추려 조사한 결과, 치주염 등 치주 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을 억제하는 물질 ‘TPS-032’가 확인됐다. 이 소장은 바이오·신약 개발 업체인 ‘쓰리빅스’의 정호영 연구소장과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고, 최근 국제학술지 ‘MDPI’에 소개됐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기린초를 먹고 있다.

이 소장은 “식물 입장에서 곤충은 자신을 먹이로 삼는 천적관계”라며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곤충은 이걸 해독하려는 물질을 갖고 있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붉은점모시나비의 먹이식물이 기린초이듯이 대다수 곤충의 먹이식물은 정해져 있다. 식물은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잎을 두껍게 만들거나 가시를 세우는 등 물리적으로 변하지만 독성이 있는 대사물을 분비하는 등 2차 변화도 취한다. 곤충은 이에 대응해 나름의 해독물질을 만들도록 진화한다. 이런 차이가 곧 종 고유의 가치가 된다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에서 치주염을 유발하는 박테리아를 억제하는 항균물질이 나왔지만 어느 종에서 또 새로운 항균물질이 발견될지 모른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서 엉겅퀴 꿀을 빨고 있는 붉은점모시나비 수컷.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이 ‘겨울 애벌레’ 몸 속에는 항염·항암물질로 기대되는 다른 펩타이드도 있다. 정호영 소장은 “항염 효과를 가진 펩타이드도 발견해서 시험관 내 실험과 쥐실험이 끝났다”며 “이 펩타이드가 아토피를 유발하는 균을 처리해 원상복구한다는 결과치를 받았고 전임상시험 계획을 짜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펩타이드는 장염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돼 쥐실험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정 소장은 “항암 연구는 기초단계긴 하지만 어떤 유전자의 발현이 저해되고 활성화되는지, 이를 어떻게 조절할지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물질들이 의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신약이나 의약품으로 산업화되기까지는 의료기기법 통과 등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정 소장은 “멸종위기종 복원이 사람에게도 이로운 일이 많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논문”이라고 밝혔다.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 시작에 불과”

이번 펩타이드 발견은 붉은점모시나비의 의학적 활용 가능성에 그치지 않는다고 한 이 소장은 “인간은 딱 1종이 1만50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곤충은 150만∼350만종으로 추정되는 무수한 종이 3억5000만년의 역사를 이어왔다”며 “인간이 양봉, 양잠 외에는 거의 활용 못하는 곤충 자원이 얼마나 많이 사라지고 있느냐”고 안타까워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서 서식하고 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금개구리. 박유빈 기자

다량 번식해 해충으로 여겨지는 매미나방이 이 소장에게는 무수한 가능성의 보고처럼 여겨진다. 매미나방은 곤충계 대표 ‘잡식가’다. 특정 먹이식물만 섭취하지 않는다. 그는 “기린초만 먹이식물로 삼는 붉은점모시나비에도 다양한 항균물질이 있는데 매미나방엔 얼마나 많은 물질이 숨어 있을까 궁금하다”고 했다. ‘모든 사람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물질이 하나씩은 있는데 한 사람만 아무 알레르기도 없다면 그 사람의 면역체계는 뭔가 남다르다고 볼 만하지 않을까’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연구소에 서식하는 생물을 먹이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만 한 해 2000만원이 넘는다. 곤충 ‘몸값’은 더 나간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붉은점모시나비를 잡으면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 소장은 “멸종위기 곤충의 경제적 가치를 생각하면 많은 곤충 관련 연구비가 살충에 쏠린 현실은 참 안타깝다”고 했다.

 

횡성=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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