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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년 세계가 단절되면 각국은 감시와 억압을 키울 수도 있다” [책에서 만난 문장]

‘유라시아 해상 경제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주요국 간 긴장과 대치가 한층 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를 비롯해 산호초 지대 곳곳에 인공섬이나 군사 시설 등을 설치했고, 미군은 항공모함(사진) 등을 동원해 지역에 대한 순찰과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단절된 경제 체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공급망이 붕괴되고 시장이 사라지며 여행이나 관광처럼 한때 수익성이 좋았던 분야가 감소하면서 국가와 기업은 막대한 재정 손실을 입게 된다...이 같은 세계에서 국가들은 국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요소를 결합한 혼합된 형태의 정치모델을 채택한다. 이는 감시와 잠재적인 억압 요소를 증대시킬 것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2021, Global Trends 2020.; 박동철·박삼주·박행웅·정승욱 옮김, 2021, [글로벌 트렌드 2040], 파주: 한울엠플러스, 198-199쪽.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지난 4월 발표한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 [글로벌 트렌드 2040]에서 20년 뒤의 세계를 전망하며 제시한 다섯 가지 시나리오 중 ‘분열된 세계’ 시나리오가 제시한 ‘2040년 세계의 모습’입니다. 분열된 세계라면, 아무래도 평화롭고 협조적인 국제 질서가 사라진 뒤 적대적인 개별 국가주의가 득세하는 모습일 텐데요. 대략의 모습만 봐도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습니까.

 

글로벌 트렌드 보고서는 1997년부터 4년마다 한 차례씩 미국 대통령 선거에 맞춰 발간돼 왔는데요, 이번에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발표됐지요. 이번 보고서의 부제는 ‘더 다투는 세계’. 보고서는 2040년 세계의 전략적 환경을 형성할 구조적 힘을 먼저 고찰하고 이어서 새롭게 형성될 역학 관계를 살펴본 뒤 최종적으로 2040년 세계에 대한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책에 따르면 NIC는 2040년 세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구조적 힘으로 인구 통계와 환경, 경제, 기술 네 가지를 꼽습니다. 세계 인구 증가의 둔화는 일부 개발도상국에 도움이 되겠지만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겪는 선진국과 동아시아 주요국을 압박할 것이고 보건과 빈곤 축소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하지요. 환경과 기후 변화의 경우 점차 인간과 국가의 안전에 대해 위험을 가중시키고 각국에 힘든 선택을 강요할 것이라며 특히 부담이 균질하지 않아 주요국간 경쟁과 불안정을 고조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합니다. 경제 분야에선 국가부채가 증가하고 무역환경도 더 복잡해지면서 국내외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이 적지 않고, 기술 개발의 속도가 크게 빨라지면서 새 갈등과 교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관측하고요.

 

이에 따라 사회, 국가, 국제 차원에서 새로운 역학 관계도 형성될 전망이다. 향후 수년 동안 경제성장이 완만하고 교육과 복지가 약화하면서 대중들의 불신과 환멸이 심화하고 분열이 커질 수 있고, 국가 차원에선 경제적 제약과 인구통계학적 문제 등이 합쳐져 대중의 요구가 커지는 반면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 사이의 불일치가 커지면서 지속적인 갈등과 정치적 변동 가능성에 직면할 수 있다. 국제적 차원에선 권력 원천이 다변화하면서 관계와 제도, 규범이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변덕스런 지정학적 환경 등으로 국가간 분쟁 위험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보고서는 네 가지 구조적 힘과 세 차원의 새로운 역학 관계를 살펴본 뒤 2040년 세계의 모습을 ‘민주주의 르네상스’, ‘표류하는 세계’, ‘경쟁적 공존’, ‘분열된 세계’, ‘비극과 이동성’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전망합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먼저 2040년 세계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주도하는 열린 민주주의가 다시 유행하는 열풍 속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급속한 기술 진보는 세계경제를 변모시키고 글로벌 협력 체제는 세계적 과제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사회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 미국이 민주주의 부활을 주도한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사회적 통제와 감시로 스스로 혁신을 질식시킬 가능성이 있지요. 이른바 ‘민주주의 르네상스’ 시나리오죠.

 

반대로 중국 같은 주요 강대국과 지역 강국이 국제 규칙과 제도를 무시하면서 국제체제는 방향성을 잃고 혼란하며 불안정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협력 시스템이 약화하면서 경제 성장의 불균등이 심화하고 기후 변화나 불평등의 심화 등 세계적 도전은 방치될 수도 있지요. 이때 중국이 주도 국가이지만 그렇다고 세계를 주도하진 못하겠지요. 이른바 ‘표류하는 세계’ 시나리오고요.

 

물론 미국과 중국이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면서 교역관계를 이어가지만 정치적 영향력이나 기술 패권, 전략적 우위를 둘러싸곤 치열하게 경쟁을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낮지만 기후문제 등 장기적인 과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지요. 이럴 경우 미국과 중국은 두 갈래로 갈라진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번영하면서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입니다. 이른바 ‘경쟁적 공존’ 시나리오입니다.

 

(100706) -- ZHOUSHAN(ZHEJIANG), July 6, 2010 (Xinhua) -- The undated photo shows a Chinese People's Liberation Army (PLA) Navy's missile frigate attends a routine live-ammunition training in the East China Sea. The training was held by the Navy's East China Sea Fleet recently. (Xinhua/Zha Chunming) (ypf)/2010-07-07 00:42:36/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 같은 유력한 세 시나리오 외에도 현재의 추정과 다소 어긋나는, 보다 급진적인 시나리오 역시 배제할 수 없겠지요. 즉 세계화가 완전히 무너지고 위협으로부터 각각 자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경제 및 안보 블록을 형성하는 ‘분열된 세계’ 시나리오와 황폐화된 지구환경 위기에 대응해 지구적으로 혁명적 변화가 이뤄지는 ‘비극과 이동성’ 시나리오 두 가지가 그것이지요.

 

크게 보면 ‘민주주의 르네상스’ 시나리오는 현재의 추세를 감안해 낙관적으로 전망한 것이고, ‘표류하는 세계’ 시나리오의 경우 비관적으로 바라본 것이며, ‘경쟁적 공존’ 시나리오는 현재의 추세가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뒤의 ‘분열된 세계’나 ‘비극과 이동성’ 시나리오는 현재 추세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무시할 순 없지요.

 

2040년의 세계의 질서가 책이 제시한 시나리오대로 전개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시나리오가 품고 있는 미래의 여러 가능성을 세심하게 살펴보면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과제나 전략, 시사점을 찾아 차분하게 준비하고 수행하는 일겠지요. 그럼에도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면서 유비무환의 자세로 하나씩 준비해간다면 좋지 않을까요. 당신 역시도요.(2021.6.10)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 세계일보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