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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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가 코냑을 누른 결정적 이유 [명욱의 술 인문학]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증류주 시장에서 브랜디가 강세였지만 포도나무 병충해의 영향으로 위스키가 우위를 차지, 현재까지 증류주 시장에서 절대 강자가 되고 있다. 사진은 손으로 데워 따뜻하게 마시는 코냑 브랜디.

위스키(Whisky)는 전 세계 증류주 시장의 절대 강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부터 아일랜드의 아이리시 위스키, 미국의 아메리칸 위스키, 캐나다의 캐네디언 위스키, 그리고 일본 위스키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위스키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위스키 시장의 전 세계적인 규모는 2019년 기준 617억달러, 우리 돈 약 70조원. 그 뒤를 있는 것이 바로 브랜디(Brandy). 시장의 규모로 본다면 218억달러로, 우리 돈 24조원 정도 된다. 브랜디는 프랑스 코냑 지방이 가장 유명한 원산지인데, 아예 이 지역의 브랜디를 코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위스키와 브랜디(코냑 등)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원료. 맥아 등 곡물을 중심으로 발효 및 증류하는 위스키와 달리 브랜디는 과실, 특히 포도를 많이 사용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위스키의 원료는 맥주이고, 브랜디의 원료는 와인인 것이다.

현재는 위스키가 브랜디(코냑)와 비교하면 약 3배 정도 시장이 크지만 19세기 초만 해도 브랜디가 이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바로 한자동맹(독일 여러 도시가 상업상의 목적으로 결성한 동맹) 등으로 자본주의 발전에 특출한 역할을 한 네덜란드 상인들 때문이다. 당시 네덜란드 상인은 장기 저장 및 관리가 어려운 와인 대신 획기적인 제품을 취급하려고 했는데, 그때 착안한 것이 증류주인 브랜디였다. 알코올 도수 20도가 넘으면 술은 거의 상하지 않는데 브랜디가 이러했다. 이때 제작한 제품명이 ‘브랜드 바인(Brandewijin)’으로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브런트 와인(burnt wine)’, 이것이 나중에 ‘브랜디’가 되었다. 당시 영국은 이제 막 증류한 코냑 원액을 수입, 영국에서 숙성해 판매도 했다. 증류는 프랑스에서, 숙성은 영국에서, 판매는 네덜란드가 하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브랜디보다 위스키 시장이 더 클 수 있었을까? 이것은 와인 및 브랜디의 아픈 역사에서 알 수 있다. 바로 1864년 북미에서 들여온 포도나무 묘목에 필록세라라는 해충이 붙어왔기 때문. 필록세라는 프랑스 포도의 씨를 마르게 했고, 포도밭의 4분의 3을 파괴했다. 원료가 사라진 순간이었다. 그렇다 보니 포도 증류주 자체를 만들지 못했고, 그 대체재로 위스키가 등장했다.

제조사 입장에서 위스키는 브랜디보다 원료 관리가 용이했다. 보리는 저장성이 좋지만, 포도는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상한다. 또 코냑 브랜디는 포도 하나로만 만들지만, 위스키는 보리뿐이 아닌 밀, 쌀, 감자 등 대체재가 있었다.

참고로 필록세라의 서식지는 북미였다. 하지만 대항해시대만 하더라도 이 병충해가 유럽으로 들어올 일은 없었다. 양 대륙을 범선으로는 왕래하는 데 두 달이 걸렸는데, 필록세라는 두 달 동안 배 안에서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나 증기선이 나오면서 유럽과 북미 왕래시간이 1∼2주가량으로 줄어들었고, 이는 필록세라가 북미에서 유럽으로 생존해서 넘어올 수 있게 했다.

즉 필록세라가 일으킨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와인 산업의 대재앙은 산업혁명이 가져온 비극인 셈이다. 그 결과 증류주 시장의 강자였던 브랜디(코냑 등)는 위스키에 1위 자리를 뺏겼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브렌디에게 불행이었던 것이 위스키에는 행운이었다. 빨라진다고 모두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필록세라가 알려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