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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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정거장만 더 오면 집인데”… 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

아들 생일상 위해 장 보고 버스 탔다 변 당한 어머니 사연도
지난 9일 광주 동구 학동의 건물 붕괴 현장에서 건물 잔해에 매몰됐던 시내버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네 정거장만 더 왔으면···.”

 

10일 오전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에서는 고교생 2학년생을 둔 엄마 A씨의 통곡소리가 이어졌다. 전날 학동 재개발지역의 건물 붕괴로 학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오던 아들 B군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A씨는 사고 나기 30분 전에 아들이 54번 시내버스를 탄 것을 알았다. 아들이 버스를 타고 카드로 요금을 결제하면 A씨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뜨기때문이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아들이 탄 버스가 이날 오후 4시30분이면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내버스로 학교에서 집까지 30분 정도 걸리기때문이다.

 

하지만 도착 시간이 됐는데 집에 오지않았다. A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때마침 방송에서는 집 부근 재개발 지역의 5층 건물이 무너져 시내버스를 덮쳤다는 뉴스를 봤다.

 

A씨는 ‘혹시 저 버스에 내 아들이 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A씨는 곧바로 사고 현장을 갔다. A씨는 구조대원에게 “고등학생 남자는 없느냐”고 울먹이면서 물었다. 이날 구조가 한참이던 오후 7시까지도 아들은 생존자와 사망자 어느 명단에도 들어있지않았다. 구조가 진행중이라 살아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않았다.

소방 구조대는 이날 오후 8시쯤에 시내버스 뒤쪽에서 숨져있는 시신 5구를 수습했다. A씨는 20대의 남자가 수습됐다는 얘기를 듣고 조선대병원으로 갔다. B군은 사망자 9명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수습됐다.

 

A씨는 조선대병원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A씨는 “서너 정거장만 더 오면 집인데···”라며 말을 잇지못하고 오열했다.

 

또다른 60대 어머니 C씨는 이날 아들의 생일상을 차리기위해 시장에서 장을 보고 이 시내버스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아들 D씨는 “이렇게 허망하게 보낼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식당을 운영하던 60대는 다음날 장사 준비를 위해 찬거리를 준비하고 시내버스를 탔다가 끝내 내리지 못했다.

10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구역 철거 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잠시 중단됐던 매몰자 수색이 재개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망자 9명은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기독병원에 분산 안치돼 있다. 안타까운 사연들이 전해지면서 병원 안팎의 시민들은 눈시울 붉히고 있다. 광주 동구청 광장에 합동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