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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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엽의고전나들이] 스승, 벗, 손님

훌륭한 삶이 어떠한 것인지 여전히 모를 일이다. 성현이나 위인을 따라 하면 될 것도 같지만, 역량과 기질이 다르고 시대가 다른 바에야 언감생심이다. 다 떠나서 그런 분들은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 까닭에 구체적인 순간마다 삶의 지침이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좋은 스승과 좋은 벗을 찾아 교류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타개책 일 수 있겠는데 그 또한 여의치 않다.

그래서 세상에 사귈 만한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사람 대신 다른 것들을 찾는 예가 허다하다. 가령 대나무를 심어두고 꼿꼿한 기개를 배우려 하거나, 개를 기르며 그 충직함에 감동하는 것이 그런 예이다. 윤선도(尹善道)는 ‘오우가’(五友歌)를 지어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다섯 친구’로 삼겠노라고 선언했다. 깨끗하고도 그치지 않는 물과 변치 않는 바위, 눈서리 모르고 뿌리 곧은 소나무와 욕심 없이 사철 푸른 대나무, 말 없는 달을 좋아한다 했던 것이다.

이는 뒤집어 보면, 사람들은 그와 달리 그치고, 변하며, 곧지 못하고, 욕심이 차있고, 말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들과 잘 지내기 어려우니 자연에 숨어 그렇지 않은 것들과 오래도록 잘 지내보겠다는 심산인데, 정말 그러한지 묻는다면 영 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가령, 쉼 없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이 시공에 구속받지 않고 변함없이 살아갈 재주는 없는 법이며, 무조건 곧기만 한 사람과 잘 지내기도 어렵고, 말 없는 사람과 재미있게 지내기도 쉽지 않다.

강희안은 꽃을 기르면서 “기이하고 고아한 것을 취하여 스승으로 삼고, 맑고 깨끗한 것은 벗을 삼고, 번화한 것은 손님을 삼았다.”(강희안, 양화소록·養花小錄)고 했다. 여기에 따르자면, 스승의 속성을 가진 것은 스승으로 대하고, 벗의 속성을 가진 것은 벗으로 대하고, 손님의 속성을 가진 것은 손님으로 대하면 그뿐이다. 벗은 되겠지만 스승이 못 된다며 한탄하거나, 스승이 벗처럼 살갑지 않다고 불만을 갖거나, 손님으로 와서 즐겁게 해주는 사람에게 배울 것이 없다며 타박한다면 세상에 남아날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나 또한 남들에게 그리 취급된다면 내가 아무리 사귀려 들어도 저쪽에서 벌써 저만큼 달아날 터, 주변 사람들부터 찬찬히 살펴보는 게 바른 순서이겠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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