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10일 성접대·뇌물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상고심을 파기환송하면서 검찰의 ‘증인사전면담’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검찰이 재판 전에 면담한 증인의 법정진술에 대한 신빙성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이 김 전 차관의 유죄 근거가 된 핵심 증인의 진술 신빙성을 제대로 소명하지 못할 경우 무죄로 뒤집힐 가능성도 있다.
당연히 파기환송심의 쟁점은 김 전 차관과 가까운 사이로 뇌물을 건넨 의혹을 받는 사업가 최모씨의 진술 신빙성 여부가 될 전망이다. 앞서 1·2심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 등 대부분을 공소시효 만료에 따른 면소나 무죄로 판단했다.
이 중 1심과 2심의 판단을 가른 것은 김 전 차관이 최씨로부터 현금과 차명 휴대전화 요금 대납 등 4300여만원을 받은 부분이다. 김 전 차관을 무죄 석방한 1심과 달리 2심은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해 법정 구속했다. 당시 사업가 최씨는 김 전 차관의 2심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하기 전 검사와 면담을 했다고 한다. 이후 검찰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최씨가 한 진술이 김 전 차관의 혐의 입증에 적잖은 역할을 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가 연예인 아들이 구설에 오를 것을 우려해 진술하지 않다가 검찰이 송금내용 등 관련 증거를 제시하자 증언을 번복한 것으로 보고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 점을 주목하고 최씨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검사 면담과정에서 최씨는 자신의 검찰 진술조서와 1심 법정 진술을 확인하고 검사에게 법정에서 증언할 사항을 물어보기도 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사전에 최씨를 면담하는 과정에서 회유나 압박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필요한 답변을 유도하거나 연습시켰다면 법정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진술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스폰서 뇌물 외 항소심에서 면소·무죄로 판결한 나머지 뇌물·성접대 혐의 등에 대해서는 상고를 기각해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로써 이 사건의 발단이 된 김 전 차관의 성범죄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가 확정돼 처벌이 불가능해졌다.
대법원이 법리가 아닌 절차의 문제점을 근거로 파기환송한 만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재판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차규근 법무부·외국인정책본부장과 이규원 검사가 김 전 차관 출금의 ‘사법정의 실현’이라는 출금 목적을 강조하는 가운데 절차적 정의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 수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김학의’란 이름에 선입견을 갖지 않고 판단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이 제대로 소명하면 증거능력이 인정돼 유죄판결이 나올 수 있지만 법정 증언 전 검찰이 사전 면담을 하는 식의 수사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공판중심주의가 제대로 확립되려면 공소유지 이후 수사는 자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차관을 기소한 검찰 수사단은 대법원 판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해당 증인을 상대로 회유나 압박을 한 사실이 없다”며 “파기환송심에서 유죄를 입증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건사무규칙에 따르면 검사는 증인신문을 신청한 경우 증인이나 그 밖의 관계자를 상대로 사실 확인 등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다.
한편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정섭)는 지난 4일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 관련해 법원에 공소장 변경 신청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경된 공소장에는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윤대진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봉욱 당시 대검 차장에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금 승인 요청이 전달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