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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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탔어요, 집에서 만나, 사랑해”… 외아들의 마지막 인사였다

희생자들 안타까운 사연

17세 고교생 희생자 중 가장 어려
비대면 기간 중 학교가다 참변

요양원 어머니 보러가던 20대
아버지 뒷좌석 앉았다가 사망

아들 생일상 차리려 시장간 엄마
가로수 덕에 생명 건진 승객도
10일 이용섭 광주시장(오른쪽)과 임택 동구청장이 전날 철거 건물 붕괴 사고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아빠 버스 탔어요. 집에서 만나 사랑해.”

철거 건물이 무너지면서 버스에 타고 있던 한 고등학생은 마지막 문자를 남긴 채 가족과 영영 이별했다. 열일곱살 어린 학생은 채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어른들의 무책임 때문에 세상을 등졌다. 부모와 가족들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하루 종일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참척의 슬픔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지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 참사로 숨진 버스 승객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잇따르고 있다. 저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학교에서 부지런히 공부했던 시민들이지만, 청천벽력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기에 유족의 슬픔은 더욱 컸다.

10일 사고 피해 유족들에 따르면 전날 건물에 매몰된 시내버스에 탑승한 A(65·여)씨는 당일 큰아들의 생일을 챙기기 위해 조금 일찍 식당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미역국을 끓여놓고 자신의 일터인 식당으로 나온 그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미역국을 꼭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직접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한 것이 맘에 거슬렸는지 전통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들고 버스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평소 시내버스를 잘 타지 않지만 시장에 들렀다 온 때문에 버스에 올랐고 자택까지 두 정거장을 앞두고 건물더미가 덮쳐 참변을 당했다.
 

 

 

그는 2년 전 고생 끝에 법원 앞에 작은 곰탕집을 차렸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줄어 평소 점심시간이 지나면 귀가했다. 사고 당일은 아들의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점심 장사를 마치고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두 아들은 “홀로 가정을 일구시느라 고생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며 “철거 당시에 현장을 안전하게 통제했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10일 오후 광주 동구청 앞에 광주 학동4구역 건물 붕괴 사고 희생자들의 합동 분향소가 차려진 가운데 굵은 비가 내리고 있다. 뉴스1

고등학생 B(17)군은 학교에서 음악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고 귀갓길에 사고를 당했다. 평소 버스 뒷좌석에 앉길 좋아했던 B군은 이날 비대면 수업이라 등교할 필요가 없었지만, 동아리 후배들을 만난 뒤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B군은 늦둥이 외아들로 부모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애교도 많아 사고 20분 전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버스 탑승 사실을 알리며 애교를 부린 것으로 전해졌다.

9명의 사망자 중 최연소인 B군은 희생자 9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사고 현장에서 수습됐다.

B군의 부모는 “버스에서 ‘집에서 만나, 사랑해’라고 말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가시지 않는다”며 “늦둥이 아들이어서 더 사랑스러웠는데 이렇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오열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는 10일 애도 성명을 냈고 광주교사노동조합은 “이런 후진국형 사고는 이제 끝내야 한다. ‘설마’ 하는 의식이 끼어들지 않도록 고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희생자 C(29·여)씨는 부모와 떨어져 살다가 이날 아버지와 함께 모처럼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던 중 변을 당했다. C씨는 아버지 바로 뒷자석에 타고 있다 숨졌고 아버지는 크게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은 C씨의 언니는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라며 눈물을 훔쳤다.

딸의 시신을 확인한 백발의 어머니는 “우리 막내딸 어쩌나…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라고 오열했다. 유가족은 “평소 공부를 잘한 막내딸이 엄마한테 온다고 매우 좋아했는데…”라며 탄식했다.

10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 현장에서 국과수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반면 건물붕괴 당시 가로수 덕에 시내버스에 탔던 일부 승객이 목숨을 건진 사연도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이날 광주 동구 학동 붕괴 사고 현장을 찾은 김부겸 국무총리에게 현장 브리핑을 통해 “콘크리트 잔해물이 시내버스를 덮칠 당시 인도에 심어진 아름드리나무가 완충 작용을 해 버스 전면부가 후면부에 비해 덜 손상됐다”고 밝혔다.

 

광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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