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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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비·이상 저온에 벼 생육 부진…" 속만 타들어 간다"

5월 내내 7∼8도… 성장 더뎌
병충해까지 발생 이중고 시달려
과수농가서도 저온 피해 ‘비상’
전문가 “북극 기온 일시적 상승 탓”
제주 서귀포시 하논분화구에서 한 농민이 모내기를 앞두고 논을 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에는 유례없이 긴 장마가 발목을 잡더니, 올해는 이상 저온 때문에 흉년이 들 것 같아요.”

 

10일 대전 유성 교촌동에서 만난 농부 김범희(60)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30년 넘게 쌀농사를 짓고 있는 김씨는 이상 저온에 비가 잦았던 지난달 모가 썩는 바람에 병충해 방제를 네 차례나 했다. 예년 같으면 농약을 한 번 쳤으면 끝났을 텐데 방제 비용만 더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 10~12도가 돼야 모가 제대로 성장하는데 지난달 내내 7~8도로 기온이 낮다 보니 모 성장률이 떨어지고 물바구미 등이 병충해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판 2000판을 기준으로 평년 농약값이 4만원이었는데 올해는 네 차례나 하면서 30만원 가까이 들었다”고 이마를 찌푸렸다.

 

이상 저온에 모판에서 모를 논으로 옮겨 심는 이앙 시기도 앞당겼다. 김씨는 “모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해 평년보다 일주일 정도 이앙을 빨리 했다”면서 “벼 생장이 늦어 올해도 흉년이 될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에서 4.5㏊ 규모의 사과농사를 짓는 정연순(69)씨도 올봄 이상 저온 때문에 손해가 크다며 혀를 내둘렀다. 정씨는 “30년 동안 사과농사를 지었지만 올해처럼 작황 상태가 안 좋은 적은 없었다”며 “꽃은 피었는데 가운데 심이 다 죽어 새카맣고 그나마 수정된 것도 전체적으로 기형 현상이 나타나 상품 가치가 떨어져 큰일”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작년엔 평지에만 서리 피해가 있었는데 올핸 저온 피해가 평지, 경사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 속만 타들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잦은 비와 이상 저온 피해가 속출하면서 지역 농가들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평균 최저기온은 11.4도로 지난해(12.6도)에 비해 평균 1도 낮았다. 지난 30년(1991~2020년)간 예년 평균 최저기온인 11.6도보다 낮다. 반면 강수량은 143.8㎜로 전년(103.5㎜)에 비해 38% 많았으며 강수일수도 14.5일로 예년(8.7일)보다 두 배가량 높았다.

 

이상 저온으로 인한 대전지역 피해는 과수 농가에 집중됐다. 시에 따르면 피해농가 75농가(경작 규모 32.8㏊) 가운데 배, 복숭아 등 과수농가가 71농가(32.1㏊)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충남지역에서는 농경지 1624㏊에서 이상 저온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올봄 북극 기온이 일시적으로 오르면서 파생된 기후변화를 이상 저온과 잦은 비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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