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풍경화 태안여행/봄날에 더 붉게 타오르는 청산수목원 홍가시나무/붉은 주단 펼친 듯 장관...그 강렬함 ‘불타는 청춘’ 같아/‘몽글몽글’ 빵지순례 몽산포 제빵소 빵·디저트 유혹하고/‘초록초록’ 허브천국 팜카밀레에선 향긋한 허브로 힐링
가을도 아닌데 불타는 단풍이라니. 마치 만추에 산과 들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처럼 불타오르는 홍가시나무. 꽃도 아닌 것이 꽃보다 화사하게 정원을 레드로 가득 채웠다. 태안 청산수목원 홍가시원 오솔길 따라 붉은 카펫 깔리니 그 길 다정하게 손잡고 걷는 연인들 사랑도 붉게 타오른다.
#봄에 더 붉게 타오르는 홍가시나무
충남 태안으로 바쁘게 달려간다. 여름 오면 사라질 홍가시나무의 불타는 모습을 올해도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다. 주소 이름도 예쁜 남면 연꽃길 청산수목원 매표소를 지나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울창한 삼나무가 터널을 이룬 황금삼나무길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현빈과 손예진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길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팔짱을 끼고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걷는 연인들 모습이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왼쪽 길은 낙우송길을 지나 홍련원으로 이어진다. 아직 연꽃은 피지 않았지만 보랏빛, 노란 꽃창포가 홍련원을 주변을 예쁘게 꾸며 마음도 화사하게 물든다.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다. 수련원에서 두 길은 만난다.
특이하게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일주문을 세운 쉼터 주변 홍련원에는 핑크빛 수국이 탐스럽게 피었다. 푸른 하늘과 초록의 연못, 삼나무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만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연못은 물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싱그러운 초록빛 개구리밥으로 뒤덮여 어디선가 개구리 왕눈이와 아로미가 슬쩍 얼굴을 내밀 것 같다
시원한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수련원에서는 수목원 직원들이 연꽃이 더욱 예쁘게 피도록 잡초를 걷어내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파란색 벤치에 앉으니 나만의 비밀 정원에 온듯 신비로움을 더한다. 카페 팜파스를 지나면 노랑 물결이다. 어른 키 높이의 커다란 황금사철나무 잎들이 이름처럼 개나리보다 짙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늦가을까지 저 모습 그대로 피어있으니 언제 와도 화사하겠다.
아기돼지 8마리가 어미 젖을 열심히 빨고 있는 조각을 지나면 청산수목원 우산포토존. 홍가시 군락에 하늘색, 주황색, 연두색, 연분홍색 우산이 달렸고 벤치에는 연인들이 다정하게 앉아 서로 바라본다. 푸른 하늘과 홍가시나무, 우산이 매력적으로 어울려 웨딩 화보를 촬영하는 곳으로 입소문 났다. 홍가시나무 잎은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색을 띠고 여름이 다가오면 초록색으로 바뀐다. 레드와 초록이 반반 섞인 것을 보니 절정은 지났나 보다. 그래도 풍경이 너무 예뻐 사진이 아주 잘 나온다. 특히 햇빛에 반사돼 반짝반짝 빛나는 홍가시나무 잎이 연인들에게 조명을 쏴주는 것 같다. 실제 홍가시나무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됐단다.
포토존을 지나 삼족오미로공원으로 들어서자 마치 단풍놀이를 온 듯 홍가시나무 잎이 불타고 있다. 초록은 거의 안 보이고 온통 레드 물결이다. 주변 나무들의 그린과 대비가 더욱 도드라져 ‘6월의 크리스마스’ 느낌마저 준다. 미로공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10년에 걸쳐 치밀하게 미로를 조성했다니 대단한 열정이다. 덕분에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명령해 만든 라비린토스처럼 한번 들어가면 길을 찾기 쉽지 않다. 그래도 갇히지 않고 돌고 돌아 전망대로 나갈 수 있으니 우리 인생 같다. 지금은 미로 같지만 언젠가는 출구를 열어주기에.
미로공원을 지나 홍가시원으로 가는 길이 바로 홍가시 여행의 절정이다. 마치 붉은 주단을 양옆에 펼친 듯 불타는 홍가시나무가 길게 이어져 대충 셔터를 눌러도 근사한 인생샷이 완성된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나는 밀레정원에는 유명한 ‘만종’과 ‘이삭줍기’ 주인공들이 그림 속에서 뛰쳐나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조각으로 꾸며졌다. 고흐브릿지를 건너 모네의 연원까지 알차게 잘 꾸며진 수목원이다. 10만㎡ 규모로 자라풀, 부레옥잠, 개구리밥, 물수세미, 생이가래 등 수생식물과 수목, 야생화 600여종이 자라는 수목원은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다. 여름에는 꽃창포와 연꽃 200여종이 피어 수목원을 장식하고 8월 말부터는 높이 2∼3m의 서양갈대 팜파스 그래스, 9월 중순부터는 핑크뮬리가 지천으로 피어 여행자들을 부른다.
#이스트향과 허브향 맡으로 팜카밀레 갑니다
청산수목원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남면 우운길에 ‘허브천국’ 팜카밀레가 있다. 여행자들은 먼저 입구의 몽산포 제빵소를 찾는다. 20년 이상 경력의 파티시에가 운영하는 빵집으로 이른바 ‘빵지순례’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입구부터 아름다운 유럽풍 건물이 눈길을 끈다. 오른손에 커피 머그잔, 왼손엔 빵과 소시지를 가득 담은 쟁반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파티시에의 그림이 건물 벽에 아주 재미있게 담겨있다. 건물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야외 테이블도 넉넉하게 마련됐다. 바질크림 치즈베이글이 시그니처 메뉴이고 맛난 빵과 디저트들이 넘쳐나 어떤 것을 고를까 고민도 넘친다.
어린왕자정원을 시작으로 팜카밀레 여행이 시작된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 테마로 꾸몄는데, 숲 사이에서 어린왕자 조형물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거나 난간에 걸터앉아 여행자들을 반긴다. 팜파스가든을 지나 로맨틱가든 앞에서 서자 어린왕자펜션 앞에 핑크, 하양, 초록이 예쁘게 어우러지는 삼색 개키버들이 한아름 피어 여심을 로맨틱으로 물들인다. 멀리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빨간 지붕의 전망대를 향해 길을 걷는다.
전망대가 선 바람의 언덕 앞에 빨간 가죽 같은 양귀비와 핑크색과 노란색으로 핀 디기탈리스가 시즈닝가든을 화사하게 꾸몄다. 전망대에 오르면 허브 가득한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팜카밀레는 5월부터 다양한 허브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오감을 자극하는 힐링공간이 된다. 라벤더가든과 애니멀가든을 지나면 ‘대지의 사과’ 캐모마일이 전망대 탑 근처까지 가득 피어 사과향이 비강을 헤집고 들어온다. 사과향이 나는 국화과 허브인 캐모마일은 위가 아플 때 차로 마시면 효과가 좋고 베개 속에 넣어두면 잠도 잘 온단다. 가만히 눈을 감고 캐모마일 향기에 흠뻑 취해본다. 워터가든 황금연못은 조각배와 노란 꽃창포로 꾸며져 아름다운 허브정원을 완성한다.
#바비큐향 진동하는 캠핑천국 몽산포 해수욕장
팜카밀레에서 자동차로 5분쯤 가면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하는 몽산포 해수욕장이다. 넓은 모래사장에 곳곳에 텐트가 펼쳐지고 아이들은 신나게 헤엄치며 바다를 즐기는 중이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가족들이 나들이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물이 빠지면 갯벌체험은 덤이다. 해변 앞 상점에서는 바지락 등을 캐는 호미 등 다양한 갯벌 체험 도구를 빌려준다.
태안반도에는 만리포, 천리포, 연포 등 손꼽히는 해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그중 태안팔경으로 꼽히는 몽산포 해변은 갯벌과 바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울창한 송림을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이 송림 속에 1969년 개장해 5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몽산포오토캠피장이 자리 잡고 있다.
캠핑 사이트에는 모래를 덮은 솔가지가 푹신하게 깔려 아주 쾌적하다. 주말이라 많은 캠핑족이 이미 모든 사이트를 가득 메웠다. 빨랫줄에는 젖은 수영복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물놀이에 허기진 아이들은 진동하는 삼겹살 굽는 냄새를 맡으며 고기 굽는 아빠의 손길을 재촉한다. 몽산포 해변에서 만나는 최고의 순간은 서해 낙조.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솔숲 사이 바다로 서서히 해가 떨어지는 풍경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자연의 선물이다.
태안=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