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11일 36세 이준석 후보를 신임 당 대표로 선택하며 한국 정치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주요 정당에서 30대 당수가 탄생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특히 서열·계파 문화가 뿌리 깊은 보수 정당에서 젊은 지도자가 탄생함에 따라 국민의힘은 물론 정치권 전반에 세대교체 바람과 함께 혁신 논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체제 등장은 9개월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통령선거의 판도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이날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서 당원 투표(70%)와 일반국민 여론조사(30%) 득표를 합해 9만3392표(43.8%)를 얻어 1위에 올랐다. 2위인 나경원 후보(37.1%)와의 격차는 6.7%포인트였다. 이어 주호영(14.0%), 조경태(2.8%), 홍문표(2.2%) 순이었다.
이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우리의 지상과제는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대선주자 및 지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당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관대해져야 하고, (문재인정부) 심판을 위해서는 변화하고 자강해서 우리가 더욱 더 매력적인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야권 통합을 중시한 중진 후보들과 달리 당의 자강론에 힘을 실었다. 당직 ‘경쟁 선발’ 방침을 내세우며 당의 변화를 예고했다.
전통적으로 안정을 중시하는 당원과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이 대표를 선택한 데는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감과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몰락 수순을 밟으며 ‘궤멸’ 위기에 몰린 국민의힘은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해 겨우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냈다. 지난 재보선 승리를 통해 변화와 중도층 흡수 없이 대선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판 갈이’를 위해 30대 당수 시대를 연 셈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대로는 정권을 탈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토대로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춰가는 것”이라며 “다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상징적 이미지에 그칠지, 구체적인 혁신을 이룰지는 이 대표의 향후 행보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당장 내년 3월 대선을 진두지휘해 정권교체를 이뤄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국민의당과의 합당 문제와 야권 유력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 문제 등이 당면한 과제다. 이 과정에서 보수 대연합과 중도층, 젊은 세대 등 당의 외연을 확장할 정치력을 발휘하느냐가 관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아주 큰 일을 하셨다. 우리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일”이라며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변화하는 조짐이라 생각한다”고 축하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도 “우리나라 정당 사상 최연소 제1야당 당 대표 선출을 계기로 합리적인 보수로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86세대’와 이들이 중심인 친문(친문재인) 세력이 당의 주류를 장악한 민주당 내에선 위기감도 감지된다. 당내 주자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도 드러난다. 가장 유력한 민주당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긴장된다. 기성 정치에 대한 심판이다. 민주당은 기성 정치의 구태를 얼마큼 끊어냈는지 돌아본다”며 친문 주도의 당 분위기를 꼬집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