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 기간 내내 돌풍을 일으키며 끝내 당권을 거머쥔 이준석 대표가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을 소화한 14일 광폭 행보를 보였다. 이 대표는 이날 새벽 서울을 출발해 대전을 찍고 광주를 거쳐 서울로 다시 올라오고, 잇단 회의 주재·참석과 국회의장 예방을 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지금까지 보인 모습과 마찬가지로 ‘파격’의 연속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5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전행 버스에 올랐다. 그는 김기현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과 서해수호 희생 장병 묘역 등을 참배했다. 그는 방명록에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은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통상 정치권 인사들의 취임 후 첫 방문지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이지만 이 대표는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등으로 희생된 장병들이 잠든 대전현충원을 찾는 파격을 택했다. 그는 당 대표가 되기 이틀 전 국방부 앞에서 열린 천안함 생존 장병과 유가족들의 시위 현장을 찾아가 눈물을 흘린 바 있다.
대전현충원을 찾은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기자들에게 “(그간 국민의힘이) 보수정당으로서 안보에 대한 언급은 많이 했지만, 보훈 문제나 여러 사건·사고의 처리에 관해서 적극적이지 못했던 면이 있다”며 “그런 부분을 상당히 반성하면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대전현충원을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날도 천안함 희생 장병의 유족과 만난 자리에서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이들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 달라’는 말을 들은 뒤 눈시울을 붉혔다. 이 대표는 천안함 유족들에게 “(천안함 사건이) 10년이 넘었는데도 (해결을 못해) 마음 아프게 해드린 것을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이 대표는 이후 철거건물 붕괴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광주로 향했다. 보수정당의 대표가 공식 일정 첫날부터 광주를 찾은 것 역시 파격 행보로 평가받는다. 이 대표는 광주 동구청에 마련된 학동4구역 철거현장 붕괴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5·18 이후 태어난 첫 세대의 대표로서 광주의 아픈 역사에 공감한다”며 “광주시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용섭 광주시장과 만나서는 “광주시민들의 아픔이 큰데, 야당으로서 협조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하겠다”며 사고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서울로 돌아온 이 대표는 취임 후 첫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다양한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 그릇이 돼야 하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우리의 언어가 돼야 한다”며 “오늘부터 우리가 행하는 파격은 새로움을 넘어 새로운 여의도의 표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또 공유자전거 등 퍼스널 모빌리티(개인용 이동수단) 산업을 언급하며 “젊은 세대에겐 이미 친숙하지만, 주류 정치인들에게 외면받았던 논제들을 적극 선점하고 다루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난 12일 첫 국회 출근길에 백팩을 맨 채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나타나 화제가 된 바 있다.
대외 행보에서 파격의 연속을 보이고 있는 이 대표는 당내 관계에선 기존 ‘여의도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는 김 원내대표와 상견례 자리에서 90도로 인사하는 등 깍듯하게 예우하는가 하면, 당직 인선에서도 속도를 내기보다는 지도부의 중진들과 긴밀히 상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처음으로 참석한 의원총회에서는 “우리 당 중심의 야권대통합이 가시화하고 있다”며 “문재인정부에 맞설 빅텐트를 치는 게 제 소명”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의원들을 “당 중추”라고 부르며 협조와 지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발언을 마친 뒤 90도로 숙여 인사했을 때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 대표는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는 “국가적 위기 상황인 만큼 야당도 협조하겠다”며 여야 협치에의 의지를 내비쳤다. 박 의장은 “이 대표의 취임은 한국 정당사에 한 획을 긋는 역대급 사건”이라고 덕담을 건넨 뒤 “(국회가) 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협치와 소통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외·대내적으로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이 대표의 전략을 놓고 정치권에선 당의 외연 확장과 내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압도적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뭘 해도 다 긍정적 결과를 낳는 것 같다”고 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