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선주자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변화·쇄신의 아이콘’이 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윤 전 총장 입당 문제를 둘러싼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양측 모두 보수·중도를 아우르는 ‘빅텐트’를 치겠다는 생각은 동일하지만 누가 핵심 주체를 맡을 것인지를 놓고 물밑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
당초 국민의힘 입당이 임박해 보였던 윤 전 총장 측이 입당을 당분간 유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예고한 대로 6월 말∼7월 초 대권도전 선언을 하되 ‘이준석 체제’의 기류 변화를 주시한 뒤 결정할 것이라는 의미다.
윤 전 총장은 17일 이동훈 대변인을 통해 보낸 메시지에서 “국민을 통합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정치만 생각하겠다”며 “내 갈 길만 가고 내 할 일만 하겠다. 여야의 협공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준석 체제’는 윤 전 총장에게 유리하기만 한 판이 아니다. 윤 전 총장이 합류할 가능성이 큰 제1야당의 경쟁력이 커진 점에서는 호재지만, 자강론을 강조한 이 대표 체제에선 ‘꽃가마’가 마련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지난 6·11 전당대회에서 야권 통합을 강조한 나경원·주호영 후보와 달리 이 대표는 윤 전 총장도 야권주자 중 한 명이라는 인식을 내비쳤다. 특정 주자를 위해 경선 연기를 검토할 수는 없다며 ‘버스 정시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국민의힘 내부에선 전당대회 흥행을 통한 정권교체 시나리오를 지지하는 기류가 커지고 있다. 압도적 1위를 기록한 윤 전 총장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변화·쇄신·역동성으로 여론 주도권을 거머쥐면 경선 승리 후보에게 자연스럽게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근 당 일각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을 자주 거론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TK(대구·경북)인 무소속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PK(부산·울산·경남)인 최 원장, 하태경 의원에 이어 원희룡 제주도지사, 호남 출신인 장성민 전 의원까지 링 위에 올리면 지역적인 확장이 이뤄져 경선은 흥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윤 전 총장으로선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국민의힘의 이런 기류를 살펴보며 섣불리 들어가기보다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윤 전 총장 참모 그룹에서 커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시작되는 8월까지는 합류해야 한다는 기류가 크지만 6월 말∼7월 초 대권도전 선언 이후 물밑 조율을 이어갈 전망이다.
국민의힘으로서도 경선 흥행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보다 윤 전 총장의 합류다. 그가 정계입문 이후 당 밖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대표도 지금보다는 절박하게 입당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막판에 ‘뿅’ 하고 나타난다고 우리 당원들이 지지해줄 것도 아니다”라며 강경한 모습을 보였던 이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잠재적인 우리 당, 야권의 대선주자가 될 수 있는 분들과 이견이 자주 노출되는 건 피하려고 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국민의힘 내 대선주자들의 견제는 더욱 커지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라디오방송에서 “윤 전 총장의 정치 시작은 여러 관측만 있고 한 번도 본인의 육성으로 들어본 적이 없다”며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공식 선언은 안 한 상태에서 대변인은 있고 (행보가) 보통 상식하고는 안 맞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같은 링 위에 올라와 치열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민들한테 각자의 경쟁력을 선보이고 도덕성을 검증받는 과정에 빨리 동참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