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아버지 돌아가셨다”… 폭행당한 택시기사 가족 사칭 댓글, 처벌은? [법잇슈]

“‘신림동 택시기사 폭행 사건’ 피해자 사망” 댓글 올린 누리꾼
스스로 “피해자 가족” 칭하며 “가해자가 장례식서 깡패 동원” 주장
“피해자 생존” 반박 글 나오면서 ‘사칭 의혹’ 일자 댓글 삭제
법조계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적용은 어려울 듯
가해자가 해당 누리꾼 고소할 경우에는 승소 가능성”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0대 승객의 택시기사 무차별 폭행 사건’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택시기사 가족’의 글이 퍼지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그러나 곧 “피해자는 살아있다”며 반박 글이 게시됐고, 문제의 글은 삭제됐다. 이로 인해 누군가 택시기사 가족을 사칭해 그가 사망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의혹이 번졌다. 이처럼 피해자 가족을 사칭해 온라인에 글을 올렸다면, 작성자는 법적 처벌을 받게 될까.

 

◆명예훼손죄 적용받을까

 

지난달 5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난곡 터널 부근에서 60대 택시기사 A씨가 20대 남성 승객 B씨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B씨의 폭행으로 A씨는 치아가 깨지고 뒷머리가 찢어지는 등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범행 당시 상황이 찍힌 영상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면서 공분을 샀고, B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과 폭행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이 사건은 최근 한 언론사 유튜브 영상에 “(A씨가) 결국 지난주 돌아가셨다. 가해자의 부모라는 인간은 장례식 당일마저도 깡패를 동원하여 난장판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리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이 댓글을 단 C씨는 앞서 같은 영상에 A씨가 자신의 아버지라며 장문의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저희 아버지가 택시기사를 하신 지 20년이 넘었고 경찰 표창도 세 차례 받았다”며 “선행만 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폭행당했다는 사실에 분하고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C씨는 “가해자 부모가 조폭을 많이 안다며 우리 가족을 협박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 글이 다른 SNS에 공유되며 이목을 끌자 A씨의 ‘진짜’ 가족과 지인이라고 밝힌 사람들이 반박 글을 올리면서 C씨의 댓글 내용이 사실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들은 “A씨는 살아있고, C씨는 가족이 아니다”라며 C씨의 글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후 C씨의 댓글은 삭제됐다.

 

한 언론사 유튜브 댓글 캡처. 이 글이 다른 SNS에 공유되자 A씨의 ‘진짜’ 가족과 지인이라고 밝힌 사람들이 반박 글을 올리면서 C씨의 댓글 내용이 사실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사망했다’는 비방 목적 아닌 단순 기만, 거짓말”

 

C씨가 피해자 가족을 사칭해 댓글을 달았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C씨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법조계에선 C씨가 피해자 가족을 사칭했더라도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허위 사실을 유포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처벌하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범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주로)는 “사칭 댓글이 처벌되려면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지 봐야 한다”며 “죽지 않았는데 죽었다고 한 게 과연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것인지가 쟁점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현 자체가 명예를 훼손할만한 표현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승준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와 ‘조직폭력배를 동원해서 이렇게 했다’ 정도로는 단순 기만과 거짓말에 불과하다”며 “사칭 글로 돈을 뜯어내려고 요구했다거나 추가적인 내용이 있다면 모르지만, 이 자체만 놓고 봐서는 사회적인 명예가 훼손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정보통신망법 위반이 되려면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글 내용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망을 통해 ‘거짓의 사실’을 유포한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사실’을 유포할 경우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서울 신림동의 한 도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B씨가 지난 5월 7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폭행사건 가해자가 사칭 댓글 고소하면?

 

법조계에선 오히려 택시기사를 폭행한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C씨를 고소할 경우에 승산이 있다고 봤다.

 

하진규 변호사(법률사무소 파운더스)는 “댓글 내용을 살펴보면 피해자 측은 (고소해도 이기기) 어렵지만, 가해자 측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며 “‘가해자 측이 깡패를 데리고 왔다’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교수도 “가해자 입장에서는 내가 죽이지도 않았는데 내 폭행으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허위 사실이 퍼지면 가해자에게 더 큰 피해가 간다”며 “가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은 SNS상에서 타인을 사칭한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지난해 7월 발의한 상태다. 이 개정안은 정보통신망에서의 타인 사칭은 그 자체로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고 사이버 공간에서 불신을 조장할 수 있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타인 사칭으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