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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대결 모두 준비” 강조한 김정은…8월 한미 연합훈련 영향 미칠까 [박수찬의 軍]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17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17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첫 공식 메시지를 내놓았다.

 

김 총비서는 “조선(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데 주력해 나가야한다”며 “우리 국가의 존엄과 자주적인 발전 이익을 수호하고 평화적 환경과 국가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자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가의 전략적 지위와 능동적 역할을 더욱 높이고 유리한 외부적 환경을 주동적으로 마련해 나갈 것”이라며 중요한 국제 및 지역 문제에 관한 대외정책적 입장과 원칙을 표명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북한, ‘버티기’ 지속하나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김 총비서의 발언을 놓고 한국과 미국을 향한 비난을 절제하면서 대화에 무게를 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김 총비서의 발언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북한이 대화와 대결 중 어느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지 명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북미 관계를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강대강, 선대선’ 기조를 천명한 바 있다. ‘대화와 대결 모두 준비한다’는 김 총비서의 전원회의 발언과 유사한 맥락이다. 

 

대화 조건으로 제시했던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가 사라졌다는 명확한 정황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먼저 대화를 제의하지는 않겠지만 판을 먼저 깨지도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17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자신이 서명한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AP통신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결국 한국과 미국에 공이 넘어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서로 공을 떠넘기면 북미 관계는 교착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미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은 분명히 조정된 외교로서 북한으로부터 분명한 조처가 있어야 한다”며 “우리는 북한이 실제로 관여를 하고자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공은 북한 코트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미국 코트에, 미국은 북한 코트에 공이 있다고 주장하면 공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점수를 얻는 스포츠 경기(대화)는 진행될 수 없다. 

 

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경제난 극복에 주력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태도 변화 여부를 주시하고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버티기’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발전시켜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하고 초대형 핵탄두 생산도 지속해서 밀고 나감으로써 핵 위협이 동반되는 조선(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위협을 주동성을 유지하며 철저히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8차 당대회에서 거론된 전술핵이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려면 탄도미사일 탑재가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3월 KN-23 개량형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처럼 유사시 전술핵을 탑재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성능을 점검, 개량하는 차원의 시험이 필요하다. 북극성-4·5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신형 전략무기 성능 검증을 위한 기술적 시험 소요도 있다.

북한이 지난 1월 14일 평양에서 개최한 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북극성-5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 총비서가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을 근거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단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앞서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2차 확대회의를 열어 군사력 강화 등을 논의한 것을 두고 이같은 상황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있다.

 

다만 북한도 경제난과 코로나19 극복이 중요한 만큼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조치를 유지하는 등 북미 관계가 경색되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관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이 지난 3월 25일 발사한 KN-23 개량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8월 한미 연합훈련이 1차 변수될 듯

 

북미 관계의 향방을 가를 1차 변수는 오는 8월로 예정된 하반기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이 꼽힌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북침 전쟁 연습’으로 규정하고, 선전매체를 통한 비난과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움직임을 보여왔다. 

 

한미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원하고자 연합훈련 규모를 조정했다. 연대급 이상 대규모 훈련은 한미가 독자적으로, 대대급 이하 훈련은 연합으로 연중 시행 중이다.

6월 15일 경남 창원 진해만 일대에서 진행된 한미 연합 구조전훈련에서 양국 구조대원들이 손상함정 긴급 복구훈련 종료 후 자국 국기를 펼치며 한미동맹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해군 제공

군 당국은 코로나19 상황과 전투준비 태세 유지, 전작권 전환 여건 조성,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훈련 규모 등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북미,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연합훈련에 대한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6일 방송에 출연해 “한미 연합훈련이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거나 추가로 고조시키는 형태로 작용하길 바라지 않는다”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8월 한미 연합훈련을 어떻게 할지 최종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15일 민주평화광장이 주최한 6.15 공동선언 21주년 특별좌담회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라며 “한반도 평화로 나아가는 중요한 길에서 전략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전략적 결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확실하게 설명하고 발표해야 한다”며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회담장에 안 나간다는 얘기를 한두 번만 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합훈련 중단 또는 축소가 협상의 지렛대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범위에 대북 제재와 인권 문제, 미국의 확장 억제 등을 포함하고 이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면, 한미 연합훈련 중단 카드만으로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어렵다. 

한미 해병대원들이 시가지 전투훈련 도중 건물 돌입 및 수색 절차를 익히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규모 실기동훈련인 독수리훈련을 중단하는 등 연합훈련 규모를 조정했지만 북한의 핵개발은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버웰 벨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최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오랫동안 핵무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하지는 않았지만, 두 무기 체계를 계속 개발해온 것은 분명하다”며 “완전히 통합된 한미연합지휘소 훈련을 유예한 것이 북한을 의미있는 협상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서는 연합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한미는 지난 3월 전반기 연합지휘소훈련 당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훈련 규모 축소로 전작권 전환의 핵심 요소인 미래연합군사령부의 완전운용능력(FOC)을 검증하지 못했다. 지난해 하반기 훈련에 이어 FOC 검증이 또 무산된 것이다.

미 공군 B-1B 폭격기와 한국 공군 F-15K 전투기들이 연합훈련을 위해 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는 8월 하반기 연합지휘소훈련에서도 FOC 검증을 시행하지 못하면 전환 목표 시기조차 정하기가 쉽지 않다. 연합훈련을 미루거나 중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미 관계의 근간인 군사동맹 체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연합훈련은 필수라는 주장도 있다.  

 

폴 라카메라 한미연합사령관 지명자는 최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준비태세 구축에 매우 중요하다”며 “전술적 수준에서는 서로 신뢰를 쌓을 기회이며 고위급에서는 훈련을 통해 얻은 교훈을 계속 쌓아나갈 기회”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북한의 반발 수위다. 연합훈련을 실시하면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은 높다.

한국군 현무-2 탄도미사일과 주한미군 에이태킴스(ATACMS) 미사일이 바다의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선전매체를 통한 비난 수준에 그칠지, 김 총비서가 군사 훈련을 참관하는 공개 행보로 맞설지,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감행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북한이 고강도 대응에 나선다면 한반도 정세가 경색되면서 북미, 남북 대화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8월 연합훈련 문제를 우리도 유연히 접근해야 하지만 북한도 유연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놓고 북한의 고강도 대응에 따른 파국 국면 조성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오는 8월 하반기 연합지휘소 훈련이 실시되면, 훈련과 관련해 남북한과 미국의 움직임에 따라 한반도 정세도 그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