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추천해 주세요. ‘쓰줍’ 다녀오겠습니다.”
이재영(26)씨는 지난 2월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쓰줍’(‘쓰레기 줍기’의 준말)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쓰레기를 주우러 산을 오르고 그 과정을 소개했다.
최근 SNS에는 이씨와 같은 쓰줍 경험담이 자주 올라오는데 이를 ‘플로깅’이라고 부른다. 스웨덴어 줍기(plocka upp)와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풀로깅은 쓰레기를 주우며 조깅하는 운동이다. 우리말로 대체한 것이 쓰레기를 담으며 달린다는 뜻의 ‘쓰담달리기’다. 달리기를 통해 체력을 기르는 동시에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야생동물의 안전을 지키고 환경을 보호하는 1석2조의 효과가 있다.
광진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씨는 환경친화적인 카페를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컵을 종이컵으로 바꾸고 일회용품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자신이 판매한 종이컵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모습을 보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가 쓰레기 ‘줄이기’에서 쓰레기 ‘줍기’로 나아간 계기다. 그날 이후 카페 인근 아차산부터 시작해 여러 산을 오르며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를 가져와 분리 배출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쓰레기가 있어도 뿌듯하고 없어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주울 때는 산을 깨끗하게 만든 것 같아서, 주울 쓰레기가 없을 때는 산이 이미 깨끗한 것 같아서다. 그러나 20ℓ짜리 가방을 들고 홀로 산을 오르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쓰레기 양은 한정적이다. 가방을 가득 채웠는데도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는 쓰레기를 볼 때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SNS로 함께할 사람을 찾아 같이 산을 오르는 이유다.
지난 3월부터 쓰담달리기를 시작한 공보빈(24)씨는 “쓰레기를 줍다 보면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10년도 더 된 듯한 쓰레기를 발견한 날이 그랬다. 수락산에서 쓰담달리기를 하던 날, 흙에 묻혀 있는 깡통을 발견했다. 글씨체가 낯설어 검색해 보니 1990년대에 판매된 꽁치통조림이었다. 공씨는 “쓰레기는 절대 안 썩는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도 10년 넘게 누군가의 발밑에 묻혀 있다가 발견될 수 있다는 의미다.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쓰레기를 줄이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쓰담달리기에 동참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김원택(30)씨는 “코로나19로 모임이나 취미생활에 제약이 생겨 등산을 시작하게 됐다”며 “어차피 가는 길, 그냥 가지 말고 쓰레기를 주우며 가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등산하며 쓰레기를 주웠던 경험이 그를 자연스럽게 쓰담달리기로 인도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시작하면서 쓰담달리기로 100개 산을 오르겠다는 ‘클린마운틴 100좌’ 목표를 세웠고 이제 고지가 눈앞이다.
2년 전 쓰담달리기를 시작한 조영준(29)씨는 SNS를 통해 적극 홍보하면서 그의 글을 보고 ‘저도 플로깅 해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낸 이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아 다회용 쓰레기봉투와 장갑을 선물로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나 많은 등산 인구가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를 한 봉지씩만 주워 와도 산이 점점 깨끗해질 겁니다. 한 명 한 명의 영향력을 믿습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