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웃기고 친구같은 정치인이 아니라 어른스러운 정치인이다.”
선거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정치인들의 청년층 구애가 눈물겹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정작 그런 노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취업준비생 이모(27)씨는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겉모습만 젊은 세대와 비슷해 보이려 애쓰지 말기를 바란다고 잘라 말했다. “청년층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고 이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지 깊은 공감을 통해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유력 정치인들이 MZ세대 표심을 잡기 위해 음악과 게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용에 나섰으나 당사자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보여주기식 정치가 아닌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치라는 주문이 쏟아진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MZ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인기 SNS인 틱톡에 마술사와 힙합 등의 스타일로 변신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정 전 총리가 손뼉을 치자 마술사로 복장이 바뀌고, 해리포터 옷을 뒤로 집어 던지자 금반지와 가죽재킷, 선글라스를 착용한 힙합 패션으로 변한다. 영상은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정 총리가 등장하며 마무리된다.
만 50세로 여권 대선주자 중 최연소인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유튜브와 틱톡에 브레이브걸스의 인기곡 ‘롤린’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최근 유행 중인 ‘부캐(제2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부캐로 신인가수 ‘최메기’를 만들어 유튜브 최문순TV에 지난 13일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 최 지사는 “걱정마, 걱정마, 당신은 귀한 사람”이란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를 직접 불렀다.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는 MZ세대가 즐기는 게임에 도전했다. 그는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의 e스포츠 경기장인 ‘롤(LOL·리그오브레전드)파크’를 찾아 롤을 체험했다. 게임 아이디는 ‘여니’였다. 이 전 대표는 “e스포츠 육성을 위해 학교 스포츠로 편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유력 정치인·정당들의 청년 표심 잡기는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철이면 늘 있었던 일이다.
2017년 3월에 열린 ‘쇼미더(show me the)바른정당’이 대표적이다. 당시 창당한 지 2개월도 안 된 신생정당이었던 바른정당은 ‘국민이 원하는 바른정당의 모습’을 주제로 국민 랩 배틀을 열었다. 힙합을 좋아하는 2030을 겨냥해 젊은 층 껴안기 시도를 한 것이다.
시상식에서 바른정당 김성태 당시 사무총장의 ‘무아지경’ 힙합 댄스가 화제가 됐다. 김 사무총장은 다리를 쩍 벌린 채 팔과 고개를 흐느적거리는 특유의 춤을 선보였다. 이 같은 파격 행보에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가벼워보인다”, “정치나 잘하라”는 등 싸늘했다.
2015년 재·보궐 선거를 앞둔 새누리당 김무성 당시 대표는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빨간 두건과 빨간 고무장갑을 착용한 채 ‘새줌마’ 행세를 했다. 배우 차승원이 살림에 능숙한 ‘차줌마’ 캐릭터로 젊은 층의 인기를 끌었던 tvN의 인기 예능 ‘삼시세끼’를 차용해 2030 구애전략을 펼친 것이다. 김 전 대표는 공약 발표회에서 “낙후 지역에서 생활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젊은 층과 여성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청년들 반응은 냉담하다. 피상적인 이미지 흉내로는 청년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일회성 쇼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투표율과 지지도 상승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특히 계층 사다리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요즘 청년층에게는 더욱 안 통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취업준비생 김모(28)씨는 “이미지 흉내 내기에 그치는 것 같은 정치인들의 모습이 실망스럽다”며 “청년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한마디라도 의미 있는 발언을 던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인규(25)씨도 “청년은 일자리가 없어 헤매고 있는데, 춤을 추고 게임을 경험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보여주기식 말고 대학가로 나와 청년들의 이야기를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청년들은 정치인들에게 보여주기식 이벤트보다 자신들과 맞닿아 있는 변화를 원했다. 대학생 고모(24)씨는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고 말했다.
이모(27)씨는 “부동산과 취업 문제 모두 현재 좋지 않다”며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만 하지 말고 현실적인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의 자율성과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취업 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여권의) 지지율은 정체돼 있는데 MZ세대가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하니까 이들의 표심을 잡으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보인다”며 “특히 지금은 이준석 현상으로 나타나는 2030 표심이 많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힙합바지 입거나 롤 게임을 하면 관심을 끌 수는 있지만, 청년들의 삶을 보정할 수 있는 공약들, 즉 ‘내용’없이 이런 정치적 이벤트같은 ‘외형’만 두드러지면 오히려 실망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한서·김병관·이정한 기자 janghan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