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 위에 건물주’
건물만 한 채 있으면 ‘불로소득’으로 평생 호의호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건물 몇 채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육체적·정신적 ‘과로소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건물주도 적잖다.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43세대 원룸 건물을 공매로 낙찰 받은 직장인 김모(38)씨. 투자자를 유치해 자본금을 마련하고 은행으로부터 어렵게 대출을 받아 공매로 건물을 낙찰 받았다.
건물주가 됐다는 기쁨도 누리기 전에 건물 담보대출 이자비용을 내기 위해 공인중개사에게 ‘기름칠’ 해가며 공실도 잡았다. 한 때 임대법인 부도까지 갈 뻔 했던 불법개조 과태료도 직접 내부 공사를 해가며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김씨의 이 정도 ‘과로’는 시작일 뿐이었다.
◆심상치 않은 임차인 리스크
대다수의 임차인은 평범하다. 그들은 정해진 날 월세와 관리비를 내며, 특별한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김씨의 건물 4층에 입주한 A씨가 예외였다.
A씨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임대차계약을 할 때 A씨의 형제가 대신 하면서 김씨는 A씨의 상태를 알지 못하고 계약을 진행했다. 또 A씨가 입주한 이후 첫달도 별 문제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두달때부터 A씨와 이웃주민의 갈등이 시작됐다. 갈등은 주로 A씨의 피해망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많았다.
A씨는 이유없이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거나, 자신이 기르던 동물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씨가 도난당한 물건도, 기르던 동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주민이 항의하면 A씨는 오히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달려들었고, 아침과 새벽 시간을 가리지도 않았다.
건물주인 김씨는 A씨를 만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렇다고 법적으로 A씨를 내보낼 명분도 존재하지 않았다.
김씨는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정신적 피해를 받는 다른 입주민의 항의를 밤낮으로 받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A씨를 만나 퇴거요청을 했지만, A씨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결국 김씨는 임대차계약을 진행했던 A씨의 형제를 만나 설득을 했고, 보증금 이외에 이사비 명목으로 200만원의 웃돈까지 주고서 A씨를 내보낼 수 있었다.
또 다른 임대인은 김씨의 건물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화장실 찬장이 고장났다는 신고를 받은 김씨가 직접 수리하러 들어갔던 방은 수상해도 너무나 수상했다. 빨간색 셀로판지가 전등에 붙어있어 방은 온통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다른 여성 임대인들의 민원성 전화도 있던터라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해야 했다. 상황을 방치하다가는 공포감을 느끼는 여성 임차인들이 대거 퇴실할 우려가 높았다. 게다가 한번 불법적인 업소가 일했던 건물로 낙인 찍히면 평범한 임차인이 들어오길 꺼려하고, 이는 공실률 증가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김씨는 불법을 근거로 강하게 퇴거를 요청해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김씨는 “불법적인 업소를 운영하는 사람은 임대인에게 사실을 숨기고 계약한다”며 “한 번에 여러 방을 계약하거나, 불특정한 남성이 자주 건물을 들락이면 의심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건물 운영 수익률과 매매차익
김씨의 건물관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도 김씨는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반납해 건물을 관리한다. 유유자적한 삶을 기대하고 건물을 구매했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김씨가 1년에 벌어들이는 임대수익은 약 2억원, 여기에 쓰고 남은 관리비를 더하면 총 2억3000만원이 생긴다. 관리비는 건물 보수 비용으로 쓰인다. 승강기와 소방점검, 건물 청소 같이 직접할 수 없는 관리를 제외하고 지붕 페인트 공사·방역·도배·자잘한 수리는 김씨가 도맡아 한다. 관리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에서다.
1년에 벌어들이는 2억3000만원 중 약 1억3000만원은 이자비용으로 나간다. 즉, 임대 법인을 운영하면서 한 해 벌어들이는 순수익은 약 1억원이다.
수익금은 투자자들이 지분별로 나눠 가진다. 김씨의 지분은 31%이기에 한 해 3100만원 상당의 수익을 가져간다. 한달로 치면 건물을 관리하며 258만원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김씨는 “개인시간을 반납해가며 일한 것 치고는 매우 적은 수익금”이라며 “이정도면 파트타임을 해도 벌 수 있는 수준의 액수. 불로소득이 아니라 과로소득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건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훗날 매매차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건물을 공매를 통해 구입한 금액은 45억원. 주변에 비슷한 크기의 건물의 시세는 60억원 상당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보다 더 오를 수도 있다.
김씨는 건물을 다시 매각해 40% 상당의 양도소득세를 내고 남은 차익을 생각하며 고생을 감내한다고 말했다. 가령 15억원의 차익을 거둘 경우 6억원의 세금을 내고 남은 9억원 중 2억7900만원(31%)는 김씨의 몫이다. 물론 기초 투자금도 추가로 회수 가능하다.
김씨는 “건물주가 불로소득자에 투기 세력으로 보는 이들도 많지만, 의외로 일한만큼 수당을 가져가고 투자한 만큼 수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며 “수익률로 계산하면 임대수익 기준 한 해 6%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