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서는 원래 있던 곳이니 되돌려 놓으라고 한다. 문화재 관리의 대명제인 ‘제자리 찾기’를 근거로 한 주장인지라 힘이 세다. 유출 경로가 불법적이거나 비정상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반환 요구를 받은 쪽이 대놓고 거부하기는 힘든 이유다. 그러나 돌려주고 싶은 생각이 없는 내심은 분명하다. 예전에는 반환을 요구하는 쪽의 문화재 보존, 활용 능력 부족, 혹은 부재를 문제 삼았고, 실제로 먹혔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고 이제는 반환 요구가 정당한 것인지 등을 면밀히 따진다.
해외에 있는 문화재의 환수를 두고 흔히 목도하는 갈등의 구도이지만 국내에 소재한 것을 두고도 원래 소장처와 현재 소장처 사이에 심심찮게 벌어지는 양상이다.
지난 16일 강원도 월정사를 중심으로 한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 범도민 환수위원회’(환수위)가 출범하면서 문화재계의 이런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당시의 약탈과 절도, 이후에도 부실했던 우리의 관리 시스템 등에서 비롯된 문화재 유출은 지금도 해결 난망의 과제로 종종 떠오른다.
◆약탈과 무관심, 문화재 ‘이산의 아픔’
단초는 역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바가 크다. 아무렇지도 않게 문화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 국내에서도 필요에 따라 맘대로 자리를 옮겼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강원도 오대산에 사고(史庫)를 설치하고 보관해 온 실록의 유출은 최악의 사례로 꼽힌다. 오대산 사고는 인근의 월정사 승려들이 지켰는데, 일제가 1913년 무단으로 빼내어 일본 도쿄제국대학으로 옮겼다. 10년 후 도쿄 대지진으로 상당수가 훼손되어 일부만 전하던 것이 국내로 돌아온 것은 2006년이었다. 환수 후 한동안 서울대에서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본은 2016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외부에 자리 잡아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석조 문화재 중에도 이런 게 적지 않다.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보물),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 등은 일제가 경복궁 훼손에 골몰하던 1900년대 초반 경복궁으로 옮겨진 뒤 해방 이후에도 상당기간 그곳에 묶여 있다가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제는 불교문화재인 석탑과 불교를 배척한 조선의 정궁 경복궁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조합이라는 사실에 연연하지 않았고, 해방 이후 우리는 이를 바로 잡으려는 관심도, 의지도 없었다. 이 때문에 짝을 이뤄 조성되었던 석탑과 탑비가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른 하나는 원래 자리에 있어서 지금도 ‘이산의 아픔’을 겪는 것도 있다.
이 외에도 도난이 의심되는 출처불명의 문화재가 엉뚱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 갈등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쉽지 않은 제자리 찾기, 이유는
문화재 보존·관리의 대원칙인 ‘원형’은 외형의 유지뿐만 아니라 ‘본래 있던 자리’도 굉장히 중요한 개념으로 포함한다. 본래 자리에서 문화재의 의미, 정체성이 가장 잘 구현되기 때문이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가 중요한 이유다.
일제강점기에 유출된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국보)이 강원도 법천사지로의 귀향을 앞두고 있는 것은 이런 인식이 현실화된 사례다. 이 탑은 1911년 법천사지를 떠난 뒤 서울, 일본 오사카 등을 전전했다. 어렵사리 서울로 돌아왔으나 6·25전쟁 당시 포격을 맞는 아픔을 겪었다. 이때의 훼손 때문에 전면 해체, 수리를 한 석탑은 100여년 만의 귀향을 기다리고 있다.
환수위가 오대산 사고본을 돌려 달라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환수위를 주도하고 있는 월정사 주지 퇴우 정념 스님은 지난 16일 환수위 출범식에서 언론과 만나 “실록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오면 우리의 역사의식, 민족정기가 미래로 향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요구는 분명한 명분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전의 다른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환수를 요구하는 쪽의 관리 역량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력,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문화재 보존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월정사 이병섭 문화기획팀장은 “국비를 지원받아 실록을 보관하기 위한 박물관을 설립하고, 2019년에 개관했다. 인력도 충원해 실록 관리를 위한 현실적인 문제는 다 해결했다”며 “그래도 관리 능력에 의문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지원을 정부가 해주고, 환수된 문화재를 기반으로 지역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자리찾기가 어려운 진짜 이유는 현소장처의 ‘유물 욕심’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환수 대상이 가치가 큰 문화재일 경우에 특히 그렇다. 한 불교문화재 전문가는 “박물관은 소장 문화재가 어떤 이유에서든 한 점이라도 나가면 존재근거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수장고에 넣어두고 제대로 연구, 활용도 못하는 게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관리 능력 등 다른 이유와는 별개로 환수 주장 자체의 정당성이 의심을 받기도 한다. 오대산 사고본 실록만 해도 “실록을 작성하고, 관리한 주체는 조선의 왕실이었던 만큼 왕실전문박물관인 (현재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에 두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는 의견이 만만찮다. 환수 요구의 주체가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은 다른 사례에서 불거지기도 한다.
한 박물관 관계자는 “경기도의 한 사찰은 인근에서 발굴된 유물을 돌려 달라고 주장하는데 현재의 사찰과 유물을 만들었던 과거의 사찰은 맥이 닿아 있다고 보기 힘들어 환수 요구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이런 경우도 있는 만큼 환수의 정당성이 성립하는지를 케이스별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유재산이 문화재를 민간기관으로 이전했을 때 전시회 등을 통한 적극적인 활용, 연구자들에 대한 폭넓은 접근 허용 등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장치를 확실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