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후 넉 달여 만에 정치선언에 나서면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9일 회견 내내 단호한 표정과 확신에 찬 어조를 보였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그간 문재인정권과 갈등을 빚었던 일을 떠올리는 듯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행사장 주변엔 수백 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일부 반대파와 충돌하는 등 서초구 양재동의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다.
이날 오전 11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앞으로 검은색 승용차가 멈춰 섰다. 검은 정장과 푸른 넥타이 차림으로 뒷좌석에서 내린 윤 전 총장은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회견장인 기념관 안으로 들어갔다. 낮 12시 반쯤 이곳에서 행사장을 찾은 국민의힘 의원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 윤 전 총장은 회견 시작 직전 기념관 입구로 나와 지지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행사엔 국민의힘 정진석·권성동·윤주경 의원 등 의원 25명이 참석했다.
윤 전 총장은 회견에서 주말간 자신이 직접 다듬은 것으로 알려진 출마선언문을 거침없이 읽어내려갔다. 그는 특히 결연한 표정으로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할 준비가 됐음을 감히 말씀드린다”고 말했고,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언급한 대목에서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기자들과 질의·응답이 시작되자 대답을 머뭇거리는 등 다소 긴장한 모습도 보였다. 윤 전 총장은 정치적 중립 훼손 논란에 대해선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법치와 상식을 되찾으려는 국민 여망을 의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어 대권 도전을 결심한 순간을 돌이키면서는 “혼신을 다해 이 일(정권교체)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정부와 갈등 및 검찰총장직 사퇴 등 그간 자신의 행보를 잠시 반추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 중반 이후로는 점차 긴장을 풀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는 역시 대권 도전을 위해 전날 사퇴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어려운 질문”이라고 웃으며 자세한 답변을 삼가면서도 “검찰총장 취임 후 예방 때 자상하게 커피를 손수 타주셨다”고 떠올렸다. 윤 전 총장은 최근 ‘전언정치’ 논란을 의식한 듯 예정된 질의·응답 시간 뒤에도 기자들의 질문을 “한두 개 더 받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관 앞에는 지지자들이 보낸 화한 150여개가 줄지어 있었다. ‘추·윤(추미애·윤석열) 갈등’ 당시 대검찰청 앞에 화환이 늘어섰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윤 전 총장을 응원하는 현수막도 기념관 주차장 등지에 수십 개가 걸렸다. 행사장을 찾은 지지자들은 회견 내내 “윤석열 대통령”, “정권교체” 등 구호를 다 같이 외쳤다. 이 과정에서 윤 전 총장을 반대하는 시민과 지지자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경찰이 제지에 나서기도 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프레스 라인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인파에 밀리면서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하는 등 위험한 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인파에 밀려 한 중년 남성이 실신해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뒤 앰뷸런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공개했다. 그는 소개 글에서 “그 석열이 형이 맞습니다”라며 자신을 “애처가”, “토리아빠, 나비집사”, “엉덩이탐정 닮았다고 함” 등 문구로 소개했다. 토리와 나비는 그의 반려견과 반려묘이며, 엉덩이탐정은 윤 전 총장과 닮은 만화 캐릭터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정이 비활성화됐고 윤 전 총장 측은 페이스북에 계정 활성화 검토요청서를 보낸 상태라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은 전날 사무실 계약 문제를 마무리하고 광화문 이마빌딩에 캠프 둥지를 틀었다. 이마빌딩은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1997년 대선 출마 당시 사용했던 곳이다.
곽은산 기자 silve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