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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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출신 작가, 서구의 일방적 역사관 재해석

호주 다니엘 보이드 ‘보물섬’ 展
‘무제’. 국제갤러리 제공

호주의 건국 영웅 제임스 쿡 선장. 영국 출신 항해가인 그는 호주, 뉴질랜드를 탐험하고 남태평양에 이어 북태평양으로까지 진출하며 ‘캡틴 쿡’으로 불렸다. 많은 섬의 위치와 명칭을 결정, 오늘날 지도를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곳에 전통과 질서를 갖고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게까지 그가 ‘영웅’일 리는 없다. 원주민들은 세상에 없다가 발견된 존재도 아니며 발견의 날은 침략의 날이었다. ‘탐험’이란 말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찾다’는 뜻이 숨어 있다. 원주민들은 서구의 위대한 발견에 수반되고 감수된 ‘위험’도 아니다. 누군가에겐 호주가 ‘보물섬’이었을지 몰라도, 원주민들에겐 당연히도 삶의 터전 자체였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왜곡된 것임을 보여주려는 듯, 관람객의 시선에 새로운 렌즈를 끼우는 작가의 개인전이 한창이다. 호주 원주민 출신 작가 다니엘 보이드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의 제목은 ‘보물섬’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호주의 탄생 배경, 서구의 일방적 역사관, 기존의 개념을 깨뜨리고 그 빈자리에 자신의 시선으로 역사와 개념을 복원해온 작가다. 그는 활동 초기 제임스 쿡 선장을 해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신작 25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번 전시에서도 영국 백인 사회 식민지 정책의 이면이 담긴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수차례 영화화되기도 했던 ‘바운티호의 반란’을 소재로 한 작품, 전통 원주민 차림을 하고 거울을 보며 축제준비에 빠진 친누나의 모습 등, 그의 정체성이 뚜렷한 작품들이 눈길을 잡는다.

작가 다니엘 보이드

그의 작품을 가장 도드라지게 하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작업방식이다. 그의 모든 캔버스에는 투명하고 볼록한 점들이 올라가 있어 ‘이건 뭘까’ 하는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그는 그림을 그린 뒤 투명한 풀을 한 방울씩 올려 화면을 덮는다. 올록볼록해진 화면이 입체적으로 변한다. 이 볼록렌즈를 통과한 스케치는 조금씩 다각도로 굴절돼 관람객의 눈에 들어온다. ‘기존의 관점을 재고하라’는 메시지, 서구 역사관이 우리 눈앞에 걸쳐 놓은 안경을 벗고 새로운 렌즈를 끼운다는 비유인 셈이다.

8월1일까지.


김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