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그간 아프가니스탄 내 핵심 군사 거점으로 삼아 온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한때 무려 10만명에 이르는 미군 장병이 주둔했던 바그람 기지는 온전히 아프간 정부 통제를 받게 됐다. 마침 미국의 아프간 전쟁을 주도한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이 타계한 직후라 미군의 바그람 기지 철수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2일(현지시간) 폭스뉴스 등 미 언론은 복수의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군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최근 바그람 기지에서 완전히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바그람 기지는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4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군사시설이다. 미군이 아프간에서 반군 탈레반을 몰아내고 알카에다를 추적하는 중추 역할을 하며 최대 10만명의 장병을 상주시킨 곳이기도 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오는 9월 11일까지 아프간에 주둔한 미군을 모두 철수시킨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는 아프간 전쟁이 2001년 알카에다의 9·11 테러로 촉발된 점을 감안한 조치다. 올해는 9·11테러 20주기이자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 뛰어든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대사관이 있는 카불에 주둔 중인 일부 병력을 제외하고 2500∼3500명으로 추산되는 미군 대부분이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7000명에 달하는 나토군은 이미 본국으로 귀환했다.
바그람 기지의 역사는 1950년대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이 대결하던 냉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소련군이 아프간을 침공할 때 점령 거점으로 활용됐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탈레반의 통제를 받기도 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아프간에 쳐들어가 바그람 기지를 장악한 뒤 각종 군사작전의 핵심 거점으로 요긴하게 활용해왔다.
이처럼 미국 입장에선 의미가 남다른 곳이지만 약 20년 만의 철군은 공식 행사 하나 없이 아주 조용히 이뤄졌다. 장장 20년에 걸친 아프간 전쟁이 미군 장병의 숱한 희생으로 미국인들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한데다 아직 탈레반이 활개를 치는 상황에서 미군 철수를 바라보는 아프간 현지 시선도 곱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 차별과 여학생들의 학교 교육 금지에 앞장서 온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을 장악하는 경우 여성들 희생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 때문인지 현지에선 “미군 철수의 최대 피해자는 아프간 여성”이란 비관론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마침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전쟁 개시를 주도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이 지난달 29일 타계했다. AP통신은 럼즈펠드 전 장관에 대해 “2001년 터진 9·11 테러는 미국을 준비되지 않은 전쟁으로 밀어넣었고, 당시 국방장관이던 럼즈펠드는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탈레반 정권 전복을 감독했다”고 소개했다. 무려 20년간 이어진 아프간 전쟁을 주도한 이가 바로 럼즈펠드 전 장관이란 얘기다. 하지만 아프간에 평화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군과 탈레반 간 내전 상황이 여전한 점을 들어 다수 미 언론은 럼즈펠드 전 장관에 대해 “실패했다”는 박한 평가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