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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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윤석열의 적

검사로 용장 능력 보여줬으나
이제는 지장과 덕장 자질 필요
희망 주는 큰 정치 펼치려면
자기를 내려놓은 下心 갖춰야

자신의 잘못을 대하는 태도는 대체로 두 갈래 길이다. 잘못을 고치는 것과 고치지 않는 것! 자세히 보면 후자도 둘로 나뉜다. 몰라서 못 고치는 경우와 알고도 안 고치는 경우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일의 성패가 갈라진다.

탄핵으로 쫓겨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몰라서 못 고친 경우일 것이다. 당 태종이 신하들과 나눈 문답을 정리한 ‘정관정요’를 통독했으나 역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법을 몰랐다. 그의 주변에는 “지당하옵니다”만 연발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대통령이 민심과 동떨어진 길을 걷고 있어도 “노”라고 외치는 이가 없었다. 이것이 ‘불통 정부’로 전락한 요인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잘못을 알고도 안 고친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국민 편 가르기였다”고 비난해놓고 집권하자마자 국민을 아예 두 쪽으로 찢어버렸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던 취임사의 다짐과는 달리 자기 잘못은 덮고 남의 잘못을 들추기에 바빴다. 이것이 ‘내로남불 정부’로 손가락질받는 이유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사람의 됨됨이는 그가 얼마나 잘못을 하지 않았느냐보다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 그것을 고쳐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자신의 잘못을 꼭꼭 숨기느라 개선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이동훈 대변인에게 결함이 발견되자 불과 열흘 만에 경질했다. 그의 F학점 용인술을 놓고 말들이 오가지만 여론은 잘못을 재빨리 고치는 용기에 후한 점수를 주는 쪽이다.

‘검사 윤석열’은 종종 용장으로 비유된다. 용장의 모습은 그동안 산 권력에 당당히 맞선 과정에서 충분히 보여줬다. 하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순 없는 법이다. 마상에서 내려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정치인 윤석열’로 성장할 수 있다. 그때 필요한 자질이 지장과 덕장의 품성이다.

윤석열은 지금까지 국정을 운영하는 지장의 능력을 국민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청년들의 분노를 웃음으로 바꾸고 반칙과 불의를 공정과 정의로 만들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정치인의 국정 수행능력은 인재를 발탁하는 기술을 보면 가늠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치세는 노비 출신까지 널리 인재를 영입한 덕분이었다. 중국 춘추시대의 첫 패자인 제환공은 항상 인재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집무실 뜰에 밤새 횃불을 밝혔다. 윤석열의 뜰에는 아직 희뿌연 어둠이 가득하다. 사람 쓰는 폭이 좁고 철학도 빈곤하다. 벌써 특정 인맥이 그를 에워싸고 ‘예스맨’들이 주변에 즐비하다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윤석열은 정부 실정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반사체일 뿐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비전과 정책으로 빛을 내뿜는 발광체적 능력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큰 정치인이 되기 위해선 그것만으론 안 된다. 자신의 빛을 남에게 나눠주는 덕장의 성품을 지녀야 한다. 그간 그의 장점으로 통했던 용장의 굳센 결기는 관용과 소통의 정치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율배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나를 내려놓는 하심(下心)의 덕목이 요구된다.

앞으로 윤석열의 노정에는 숱한 돌부리들이 나타날 것이다. 장모 실형 선고로 처가 리스크가 커진 것은 사실이나 이런 외부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 외부의 위험이 아무리 위협적일지라도 내부 위험보다 더 파괴적일 수는 없다. 작금의 국정 실패도 대통령 자신의 자질 부족이 원인이지 않은가.

맹자는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업신여긴 후에 남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한다”고 했다. 권력의 몰락은 권력자 자신에서 먼저 시작된다. 그러니 평생 남의 잘못만 지켜봤던 검사 윤석열의 눈은 이제부터 자기에게로 향해야 한다. 윤석열의 적은 “국민 약탈 정권”이라고 비판한 문재인정부가 아니다. 바로 윤석열 자신이다. 검사 윤석열이 죽어야 정치인 윤석열이 산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