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유실된 세종대왕의 왕자 태실 유물 2점이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부산박물관은 6일 부산 남구에 거주하는 이상민씨로부터 조선 세종대 태실 유물 2점을 포함한 24점의 유물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박물관이 기증받은 유물 중 세종의 왕자 태실 유물 2점은 세종의 10번째 아들인 왕자 의창군의 태지석(胎誌石)과 세종의 왕자 안태용(安胎用) 분청사기다.
태지석은 사각형의 납작한 돌 표면에 이름과 생년월일, 태를 묻은 일자 등을 새겨 놓은 유물로, 태실 안에 태 항아리와 함께 봉안했다.
세종의 왕자 의창군 태지석의 명문에 따르면 1428년 10월 27일 묘시생인 의창군의 태를 이듬해인 1438년 3월 11일 묻은 것으로 확인된다. 경북 성주군 선석산에 있는 의창군 태실 비석의 명문에 새겨진 태를 묻은 일자와 일치한다.
의창군은 세종의 왕자 중 가장 먼저 경북 성주군 선석산에 태를 묻었으며, 의창군을 제외한 나머지 왕자들은 1439년 이후 태실이 조성됐다.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는 꼭지가 달린 반구형 뚜껑 모양의 분청사기로, 태 항아리 전체를 덮는 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양 구성을 4~5단으로 나누고 연꽃잎이 겹쳐진 문양을 상감기법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독특한 형태와 문양 기법, 문양 구성을 지닌 유물은 경북 성주군 선석산 세종의 왕자 태실에서만 확인된다.
특히 연꽃잎이 겹쳐진 문양과 뚜껑 중앙 부분을 삼각집선문으로 띠처럼 표현한 기법은 세조의 안태용 분청사기와 매우 유사해 세조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박물관은 의창군의 태를 묻은 날과 세조의 태를 묻은 날이 단 하루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점과 세조의 안태용 분청사기와 장식기법 및 형식 등이 매우 유사해 이번에 기증받은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가 의창군의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향후 고증적인 자료 조사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청자완과 분청국화인화문접시 등 도자기 9점, 삼국시대 토기 1점, 19세기 일본 메이지 시대 일본화의 부흥에 이바지한 하시모토 가호의 산수화 등 19~20세기 일본화단의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일본회화 8점 등 총 22점의 다양한 유물을 기증받았다.
송의정 부산박물관장은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은 세종의 왕자 태실에서만 확인되는 특정한 시기와 장소 및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서 “향후 유물의 보존처리와 기존 연구성과 검토 및 비교 연구를 거쳐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태실은 조선 시대 왕실에서 왕손이 태어나면 땅의 기운이 좋은 곳을 정해 태를 묻었던 곳으로, 팔도의 풍수 좋은 명당에 태실이 흩어져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과 백성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전국에 있던 태실을 서울 근교로 옮겨와 서삼릉에 일괄적으로 모으는 과정에서 태실의 유물이 교란되고 중요 문화재였던 태 항아리가 상당수 도굴됐다.
세종의 왕자 18명의 태실이 모여 있는 경북 성주군 선석산의 태실 유물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상당수 도굴돼 대부분의 태실 유물이 없어졌다. 지금까지 세종의 왕자 태지석 6점과 세종의 왕자 안태용 분청사기 7점의 행방을 알 수 없었으나, 이번 기증을 통해 행방이 묘연했던 세종의 왕자 태실 유물 2점을 새롭게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