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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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구조 환골탈태… 2차전지 핵심소재 ‘동박’으로 ‘대박’ [K브랜드 리포트]

(27) SKC의 새로운 도전

비디오테이프 생산·화학 사업 이어
친환경 모빌리티 신성장 동력 삼아

머리카락보다 얇은 두께의 ‘전지박’
세계최장 길이로 양산 기술력 확보

배터리 무게 줄이고 용량 대폭 늘려
스마트폰·전기차·드론 경량화 견인
SK넥실리스 정읍공장 전경. SKC 제공
SKC 하면 아직도 ‘비디오 테이프’를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과거 SKC는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PET) 필름을 개발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비디오 테이프 제조 사업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 회사가 생산한 비디오 테이프는 1억개가 넘었고, 필름 길이를 모두 합치면 지구를 약 3000번 돌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며 미디어 환경이 급변해 비디오 테이프 사업이 쇠퇴했다. 결국 SKC는 2005년 미디어 사업에서 완전 철수했다. 이후 SKC는 디스플레이용 PET 필름 중심의 필름 사업, 프로필렌옥사이드(PO) 및 프로필렌글리콜(PG)을 생산하는 화학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PO는 SKC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었기에 화학 사업은 SKC의 주력으로 바로 자리 잡았다. 2010년대 중반 SKC의 영업이익 중 화학 사업 비중은 70~80%에 달할 정도였다. 미디어 사업 철수 이후 두 번째 위기는 2014년에 찾아왔다. 이때 국내 정유사들이 PO 사업에 진출했다. 두 번째 위기를 맞은 SKC는 완전한 환골탈태를 선택한다. 기존 사업 구조의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SKC는 치열한 내부 논의 끝에 친환경 모빌리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2차전지를 신성장 동력으로 선정했다. 또 이 분야에서 SKC가 잘 할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인지 리스트업을 하고 아이템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그 결과 SKC가 미래성장 아이템으로 선택한 게 ‘전지박’이다.

전지박은 구리를 고도의 공정 기술로 얇게 만든 막이다. 2차전지 음극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증가로 전지박 시장이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오랫동안 필름사업을 해온 SKC 입장에선 극박 제조기술, 표면 관리 기술 등의 면에서 전지박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KCFT 인수는 이러한 과정의 정점을 찍은 결정이었다. 일반적으로 2차전지용 동박의 롤(Roll) 제품은 수십㎞로 되어 있다. 이를 만들려면 2~3일 동안 찢어지지 않게 제조해야 한다. 쉽게 찢어지는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단위의 전지박을 며칠 동안 찢어지지 않게 만드는 건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사람의 머리카락 두께가 약 120㎛다.

또 긴 전지박을 넓게 생산하려면 찢김, 주름과 같은 불량이 발생하기 쉽다. KCFT는 이런 불량을 제어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이를 증명하듯 KCFT는 2019년 세계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4㎛ 두께의 전지박을 1.4m의 광폭으로 세계 최장인 30㎞ 길이로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KCFT는 그 전에도 줄곧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선보여 왔다. 2013년에 6㎛ 두께의 배터리용 동박을 세계 최초로, 2017년에는 5㎛를 역시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동박은 얇으면 얇을수록 이차전지의 경량화, 고용량화에 기여한다. 두께 감소만큼 무게가 줄어들고, 단위 체적당 에너지 밀도를 높여 전지의 고용량화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얇은 동박을 적용하면 스마트폰, 노트북 등 일상생활 속 다양한 정보기술(IT) 기기를 보다 가볍고 오래 사용할 수 있으며, 특히 드론용으로 유리하다. 드론용 이차전지는 하늘에 떠야 하는 특성상 가벼운 소재와 사용시간 증대가 강하게 요구된다. 최근에는 전기 자동차용 전지에도 얇은 동박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배터리 무게를 줄이고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SK넥실리스 정읍공장에서 생산한 동박 제품 모습. SKC 제공

SKC는 KCFT의 이 같은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다. 여기에 SKC가 가지고 있는 공정 운영 노하우, SK그룹 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SKC의 글로벌 확장 경험과 노하우를 더하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2020년 1월 100% 지분을 확보하며 인수를 마무리했고, ‘SK넥실리스’라는 사명과 함께 새 출발을 알렸다.

‘넥실리스’(nexilis)는 연결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압도적 기술력으로 미래 사회(next society)의 모빌리티를 연결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회사 이름이다.

 

동박은 두께뿐 아니라 길이와 넓이도 중요하다. 우선 고객사 입장에선 길이가 긴 제품을 공급받는 편이 유리하다. 제품이 길면 길수록 그만큼 롤을 덜 교체하게 돼 롤 교체로 인한 로스를 절약할 수 있어 생산성이 올라간다. 제품이 넓어도 같은 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양이 증가하기 때문에 고객사의 생산성이 올라간다. SK넥실리스는 2020년 10월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가장 길고 폭이 넓으며 얇은 동박 제조’로 최고기록 공식 인증을 받았다. 두께 4.5㎛, 폭 1.33m의 동박을 3박4일 동안 56.5㎞ 길이로 생산한 성과다.

SK넥실리스의 미래 전망도 ‘맑음’이다. 국내에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 3곳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리튬이온 2차전지 시장 점유율은 현재 35% 이상이며,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SNE리서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2025년까지 연평균 38%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6일 SKC 관계자는 “SK넥실리스는 지속적으로 고부가 제품을 개발하고 공정을 혁신해 고객사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배터리 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