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계에서 ‘미 점령군’이라는 발언이 논란된 바 있다. 중요 단체의 한 임원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발언도 보도되었다. 미군정 문서나 맥아더 포고령에 ‘점령’이란 말의 사용이 ‘팩트’이므로 그 발언이 문제없다는 기사도 보인다.
군대의 ‘점령’은 교전 대상 적국에 대한 행위이므로, 미군의 ‘점령’도 대상 적국에 대한 것이다. 미군정 문서에서 ‘점령’의 대상 적국을 일부의 주장처럼 단정할 수 있는가? 그 점령에 대해 명시한 당시 문서의 조항을 제대로 주목하지 않은 주관적 인식이 한국 해방의 중요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그 문서들은 한국사개설 강의에서도 중요하게 검토되는 것들이다.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미국에서도 교전 상대 ‘적국’이나 ‘점령’ 등 중대 사안은 정부 차원에서 결정돼 미군이 명령을 받아 실행했다. 미군정 문서나 맥아더 사령관 포고령의 ‘점령’을 결정한 최상위 문서는 미국 정부가 참여한 연합국의 카이로선언문과 포츠담선언문이었다.
1943년 11월 27일 3대 연합국의 미국 루스벨트, 영국 처칠, 중국 장제스는 카이로선언문을 발표했다. 3대 연합국은 일본 침략 격퇴 전쟁을 수행하며 영토를 확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점령한 지역의 반환을 결정했다. 그리고 한국인의 독립운동에서 표명된 독립 열망을 수용해 “3국은 한국인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때에 한국이 자유를 찾고 독립하게 할 것을 결의한다”고 했다. 한국의 해방이 명시된 것이다.
1945년 7월 26일 3대 연합국(미·영·중)은 독일 베를린 교외 포츠담에서 일본의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하며 전후 처리 방침을 결정한 선언문을 공포했다. 소련은 그 뒤 8월 8일에 선언에 참여했다. 8월 6,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자, 일본 정부는 10일 서둘러 항복 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 8월 14일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여 항복하겠다고 미·영·소·중 네 나라에 통고했다.
포츠담선언의 전후 처리 방침은 급격히 실행에 들어갔다. 그 제6조에서 연합국은 세계 평화, 안전, 정의의 신질서를 위해 일본 군국주의 세력을 영구히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제7조에서 그 신질서가 건설될 때까지 그리고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이 분쇄될 때까지 연합국이 지정한 ‘일본 영역 내의 지점들’은 ‘점령’된다고 했다. 미군과 소련군의 한반도 ‘점령’은 이 조항에서 시작돼 그 후 38도선 경계 등이 추가로 결정됐다. 일본의 식민지 한반도는 ‘일본국 영역 내 지점들’의 일부로서 ‘점령’됐다. 그 점령은 적국 일본에 대한 군사행위의 일부였다. 따라서 그 점령 시한은 한반도의 일본 식민지배를 제거한 후 한국의 독립이라는 한반도의 신질서가 건설될 때까지였다.
제8조에 “카이로선언의 조항들은 그대로 수행될 것이며, 일본의 주권은 혼슈·홋카이도·규슈·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한 작은 섬들로 국한한다”고 했다. 카이로선언에 이어진 포츠담선언에서 한국은 자유와 영토, 주권을 되찾게 해 독립시킬 해방의 대상으로 다시 명시됐다.
포츠담선언에 규정된 연합국 미군과 소련군의 두 가지 임무, 식민지 한반도에서 일본 세력을 제거하는 군사적 ‘점령’과 한국인의 ‘해방’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군정 문서의 ‘점령’이 마치 한국이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적대이고, 한국의 ‘해방’에 반대되는 것으로 오도하는 주장이나 역사 서술이 불식되도록, 해방기 문서에 명시된 이러한 사실이 널리 분명하게 알려져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