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를 내세워 작은 정부론을 주장했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이번엔 “민주주의를 짓밟은 중국의 잔인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작은 정부론을 통해 문재인정부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 데 이어 대중 유화노선을 직격해 지지층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적 의도라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2일 ‘중국의 잔혹함에 맞서는 한국의 최연소 정치 지도자’라는 제목으로 이 대표와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고, “이 대표가 ‘문재인정부는 중국에 기울고 있다. 한국 국민은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에) 기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 대표는 “아시아 금융 허브(홍콩)의 민주화운동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홍콩 자치권을 부정하는 중국과, 이에 친화적인 현 정부를 직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발언은 친중(親中) 정책을 펴고 있는 문재인정부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정부·여당은 홍콩 민주화운동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었던 이 대표는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페이스북에 “광주 민주화운동을 모델로 삼아가는 홍콩 민주화운동을 외면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의 침묵을 비판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일부 매체가 이를 이 대표가 반중(反中) 노선을 언급한 것으로 인용하자 해명에 나섰다. 국민의힘 당 대표실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 대표는 민주주의의 적에 대항해야 한다고 언급했으며, 중국 정부의 자치권 억압에 우려를 표명했을 뿐 이를 ‘반중’이라고 표현한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예방을 받은 뒤 기자들에게 인터뷰 발언 취지에 대해 “홍콩 민주화운동은 그들의 자치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기 때문에,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하려는 사람들에 맞서야 한다는 (것과 같은) 취지로 포괄적으로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여가부·통일부 폐지론을 주장했던 이 대표는 이날 양 부처 폐지론을 다시 한 번 공론화했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여가부와 통일부는 특임 부처이고 생긴 지 20년 넘은 부처들이기 때문에 그 특별임무에 대해 평가할 때가 됐다. (양 부처는) 수명이 다했거나 애초 아무 역할이 없는 부처들”이라고 강조했다. 여권은 물론 당내에서도 이를 향한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이 대표는 기자들에게 “(폐지론에 대한) 비판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소수자 의견을 가져온 게 아니라 상당수 국민이 공감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여가부와 통일부 폐지론의 경우 (당내 분란 등) 리스크가 있지만, 홍콩 민주화는 전선 안에서 비판받지 않으면서 보수층뿐만 아니라 중도까지 끌어낼 수 있는 이슈”라며 “이 대표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정부가 총체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쪽으로 판을 키우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