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어떤 노래를 틀어야 할지 몰라서 발라드 곡을 틀었더니 회원님들이 너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거리두기 4단계 지침 시행 이틀째인 지난 13일 서울 성동구에서 크로스핏 센터를 운영하는 A(30)씨는 유튜브에서 ‘120bpm 댄스뮤직’이라는 영상을 찾아 음악을 틀고 있었다. 정부의 거리두기 4단계 세부지침에 따라 스피닝, 줌바, 에어로빅 등 그룹운동(GX)을 할 때는 음악속도를 100∼120bpm(분당 비트 수)으로 유지해야 한다. BTS(방탄소년단)의 ‘버터’(110bpm)는 되지만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130bpm)은 안 된다.
거리두기 4단계 시행 첫날에는 실내체육시설 곳곳에서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이튿날에는 조금 달랐다. A씨는 “어제는 발라드 명곡을 틀었다”며 “회원님들이 너무 힘들어하셔서 다른 방법을 찾던 중 유튜브에 ‘120bpm 노래 모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음악속도를 일일이 측정하기 어려운 데다 음악속도 제한으로 격렬한 운동을 막을 수 있을지 등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관련 협회와 수차례 협의해 나온 결과라고 강조했지만, 정부가 GX 음악속도 제한과 관련해 얘기를 나눈 협회는 단 한 곳이었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GX 방역수칙 간담회에는 한국줌바피트니스댄스운영자협회(줌바운영자협회)만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음악속도 관련해서는 줌바운영자협회에서 의견을 주셨다”며 “앞서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영업 금지나 제한을 하지 않으면서 운동 강도를 좀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해 달라고 했고, 간담회 때 줌바협회 쪽에서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간담회에 참석한 줌바운영자협회 관계자는 “제가 제안한 건 줌바 피트니스에서 워밍업 bpm이 130부터가 적정이어서 그걸(130bpm) 제안했더니, ‘그럼 그것보다 낮으면 격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물어보셨다”면서 “그래서 그렇게(130보다 낮은 120bpm) 기준을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업종 종사자분들은 (간담회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GX 음악속도 제한’ 조치가 업종 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주먹구구식 대책이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줌바댄스 측은 음악에 맞춰 안무를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에어로빅 업계는 사실상 영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문재영 세계에어로빅협회 협회장은 “에어로빅은 본 운동으로 들어가면 (음악)속도가 140∼150bpm까지 빨라진다”며 “이후 서서히 비트가 느려져 근력운동하고 정리운동할 때 비로소 120bpm으로 내려오는데, 지침에 따르면 근력과 정리 운동만 하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GX 음악속도 제한은) 지나친 규제”라며 “비말(침방울)이 더 튀는 기준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부족하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인데 큰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외신들도 한국의 음악속도 제한 뉴스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영국 가디언은 12일(현지시간) ‘춤추기 허락’이라는 뜻의 BTS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에 빗댄 ‘노 퍼미션 투 댄스’라는 제목으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BBC는 “한국 방역당국이 땀 흘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음악속도를 제한했다”며 “BTS의 ‘버터’와 다이너마이트는 110∼115bpm 사이인 반면 블랙핑크의 곡들은 대부분 130bpm 언저리”라고 비교했다.
실효성 논란이 커지자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14일 정부 세종청사 브리핑에서 “GX는 비말 배출 확률이 매우 높은 고강도 운동”이라며 “GX 음악속도를 느리게 하고, 고강도 유산소운동 대신 저강도나 유연성운동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방역수칙을 설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질병관리청 등 전문가들이 역학조사를 통해 밀집된 환경에서 1시간 내내 격렬한 유산소운동이 이뤄질 경우 코로나19 전파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