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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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류·면접 전 과정서 '작업'… 규정 무시하고 탈락자 구제 [LG 취업청탁 리스트 입수]

‘GD 리스트’ 어떻게 관리됐나

본사 채용팀이 컨트롤타워 역할
산하 6개 본부에 채용 지침 내려

학점 미달로 불합격인데도 통과
CEO 청탁에 면접 꼴찌도 합격

LG측 “사기업 채용은 재량” 주장
LG그룹 신입사원 정기 공개채용 지원자들이 인적성검사에 응시하기 위해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LG의 채용 청탁 관리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었다. LG전자 본사 주도로 채용 청탁을 관리할 정책을 수립해 산하 6개 본부에 하달했고 본부에선 사장급인 본부장이 결재를 통해 이 과정을 관리했다. LG전자는 이렇게 선발한 입사자를 ‘GD(관리대상)’로 부르며 명단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GD는 ‘관리’와 ‘대상’ 각 낱말의 앞 자음을 알파벳으로 변환한 약칭이다. LG는 채용비리 사실이 수사를 통해 밝혀졌지만 “사기업 채용에는 재량이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서류 전형과 세 차례의 면접 전형을 거쳐야 하는 일반 응시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아빠찬스’를 기업의 재량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LG전자, 전사 차원의 채용청탁 관리

 

18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LG전자 본사 채용팀은 2014년 3월 ‘채용청탁 관리 방안’이란 새로운 인사 정책을 수립했다. ‘채용청탁이 한국영업본부에 집중되는 만큼 이 문제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LG전자 조직은 한국영업본부와 모바일(MC)·생활가전(H&A)·TV(HE)·전장(VS)·비즈니스솔루션(BS)사업본부 등 총 6개 본부로 이뤄지는데, 이 중 연구·개발(R&D) 기능이 없는 한국영업본부에 청탁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최고인사책임자(CHO) 박모 전무(지금은 LG 다른 계열사 CHO)의 지시로 마련된 이 지침은 채용 청탁과 관련한 ‘수용 조건’과 ‘처리 절차’를 담고 있다. 컨트롤타워는 ‘본사 채용팀’이었다. 청탁이 접수되면 해당 부서 부서장(임원)→해당 본부 HR담당(임원)→본부장(사장급) 순으로 보고됐고 본부장 결재를 거쳐 본사 채용팀에 전달됐다. 그러면 본사 HR담당(임원)이 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했다.

◆청탁 대상자는 서류전형 탈락자도 구제

 

청탁이 수용되면 해당 대상자(GD)를 선발하기 위해 서류와 면접전형 전 과정에서 ‘작업’이 진행됐다.

 

한모 LG전자 부사장의 아들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영업본부 2014년 상반기 정기 공채에 지원한 아들의 ‘기본스펙’은 학사학위 기준 전체평점 3.83점(5.0 만점), 전공평점은 2.97점(4.5 만점)이었다. 석사학위 기준으로는 전체·전공평점이 모두 2.33점(4.5 만점)이었다. LG전자가 응시자격으로 공고한 ‘최종학교 기준 전 학년 평점 3.0 이상’이나 ‘전공평점 3.0 이상’ 요건에 모두 미달한 것이다. 아들 한씨가 일반인이라면 1차 서류전형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아빠찬스’가 발동됐다. 한 부사장은 사업본부 인사팀장에게 “(아이가) 석사학점은 낮지만 학사학점은 괜찮으니 서류전형을 통과할 수 있도록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인사팀장과 (아들이 지원한) 한국영업본부는 이 사실을 공유하며 본사 지침에 따라 차례로 보고, 결재를 득했다. 그리고 이를 보고받은 본사 채용팀은 한 부사장의 아들을 GD로 선정하는 한편 관련 지침을 하달했다. “1차 서류전형 세부 기준에 부합되지 않아도 1차 면접 기회를 부여하도록 하세요.”

 

이렇게 아들 한씨는 가까스로 1차 서류전형을 통과했지만 인적성검사에서 또다시 탈락하는 ‘돌발 상황’도 벌어졌다. 한국영업본부는 다시 한번 본부 내 보고, 결재 절차를 거친 뒤 본사의 ‘통과’ 승인을 받았다. 그렇게 2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한씨는 면접을 거쳐 LG전자에 채용됐다.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모습. 뉴시스

◆CEO 청탁에 면접 꼴찌가 합격

 

LG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책임자(CEO)가 청탁한 사례도 도드라진다. 청탁 대상자인 A씨는 2015년 상반기 정기 공채가 진행 중이던 그해 6월 말 2차 면접전형에서 105명 중 102등이란 최하위 성적을 받았다. 상위 60명까지 잘라 최종 면접 대상자로 선별한 뒤 최종 면접 기회를 부여하기로 한 규정대로면 A씨는 탈락이었다. 하지만 CEO를 배경으로 둔 A씨에겐 다른 세상 얘기였다.

 

LG전자 본사 채용 담당자는 A씨가 2차 면접전형 불합격 대상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윗선에 보고했다. LG전자 인사·채용 업무를 총괄하던 본사 HR담당은 아래 채용팀장에게 “A씨를 합격시켜 추가 검증을 받게 하라”는 취지로 지시했고, 이는 한국영업본부까지 전달됐다. 한국영업본부 채용 담당자는 상급자들에게 “본사 윗분들 컨펌(확인)을 받았으니 A씨에게 최종 면접을 볼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보고했고, 본부 HR담당은 A씨를 최종 면접 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A씨는 면접을 거쳐 LG전자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LG전자가 채용재량으로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며 “업무방해가 성립될 요인도 없고, 피해자도 없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사실관계는 맞지만 법리상 형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는 없다’는 변호인단 논리와 같다. LG전자는 고위 임원 다수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과 관련해서도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명단에 등장하는 인물은 공소시효와 압수수색 영장 기각 등으로 수사 대상에서 빠졌는데, ‘수사를 받은 사실이 없어 확인된 사실도 없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 LG전자 공채 공식 절차는… 서류전형·적성검사 거쳐 세 차례 면접

 

국내 대기업 정기 공채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학점과 영어능력시험 점수 등이 일정한 기준을 넘어야 한다. 취업준비생들은 이런 자격요건을 ‘기본스펙’이라고 한다. LG전자 역시 응시자들에게 기본스펙을 요구했다.

 

LG전자 채용 전형은 보통 ‘입사지원→1차 서류전형→최종 서류전형→면접 전형→최종 입사’의 5단계로 진행됐다. 기본스펙이 갖춰지지 않은 응시자는 1차 서류전형에서 불합격 처리됐다.

 

일례로, 2014년 상반기와 2015년 상반기 LG전자 신입사원 정기 공채 공고에 따르면 응시자들은 최종학교 기준 전 학년 전공 평점이 4.5 만점에 3.0을 넘어야 지원할 수 있었다. 또한 서류 접수 마감일 기준 2년 이내에 비연구개발 분야는 토익 700점 이상 또는 토익 스피킹 레벨 6 이상, 오픽 IM 이상의 성적을 보유한 것이 확인돼야 했다. 연구개발 분야는 각각 한 단계씩 낮은 토익 600점 이상 또는 토익 스피킹 Level 5 이상, 오픽 IL 이상이었다.

LG전자는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응시자 중 ‘인적성검사’를 거쳐 최종 서류전형 합격자를 걸러냈다. 1차 서류전형 합격자들은 인성검사를 통해 LG와의 적합성을 확인받고, 언어이해·수리력·추리력 등을 살펴보는 적성검사를 통과해야 했다.

 

서류 전형에 최종 합격한 응시생은 직무 지식 및 직무 적합도를 검증하는 직무면접과 태도 및 자세 등을 인성 항목을 검증하는 인성면접을 볼 수 있다. LG전자는 면접전형을 세 차례로 나눠 시행했는데, 각차 면접을 통과해야 이후 면접 기회를 부여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LG전자는 이후 기본스펙을 적용하는 직무 분야를 조정하거나, 면접 전형 절차에 인턴십 전형을 추가하는 등 다소간 채용 절차를 수정하기는 하지만 기존의 틀은 대체로 유지했다.


특별기획취재팀=조현일, 박현준,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