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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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집단감염, 국가배상 받을 수 있을까 [법잇슈]

감염 충분히 의심되는데 격리 안 했다면 국가책임 인정될 듯
전문가 소견에 따른 판단이라면 국가배상책임 묻기 어려워
메르스 사망 환자 유족 소송, 法 국가책임 인정 안해
지난 20일(현지시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이 승선했던 문무대왕함이 출항하고 있다. 이날 출항한 문무대왕함은 3개 항구를 경유한 뒤 오는 9월12일께 진해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국방부 제공

청해부대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대해 서욱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한 가운데 감염된 군 장병들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지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에서는 군 당국이 첫 감염 의심자가 발생했을 때 어떤 상황에서 격리하지 않았는지에 따라 국가배상책임 여부가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 장병들이 ‘배’라는 밀폐된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감염자를 격리하지 않아서 추가 감염이 퍼졌다는 인과관계는 다투기 어려운 만큼, 첫 유증상자 발생 당시 코로나 감염이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임에도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은 '과실'의 입증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국방부에 따르면 이날 청해부대 34진 장병 대상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 부대원 301명 중 270명이 양성으로 판정됐다. 전체 부대원 중 확진자 비율은 90%에 달하는 셈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전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해외바다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 온 청해부대 34진 장병들을 보다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다"며 "다수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국방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해부대 장병 및 가족 여러분들과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브리핑룸에서 청해부대 34진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문제는 이번 집단감염 사태의 원인으로 군 당국의 '늑장대응'이 지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군수물자 적재를 위해 아프리카 해역에 도착한 청해부대는 아프리카 항구에서 떠난 첫날인 지난 2일 첫 유증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단순 감기로 여겨 합참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유사 환자가 속출했지만 신속항체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받자 격리 등 추가 방역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후 첫 유증상자 발생 열하루 뒤인 13일에서야 PCR 검사를 실시하고 유증상자 6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

 

첫 유증상자가 발생했을 때 PCR 검사를 의뢰하고 즉각적인 격리조치를 취했다면 집단감염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군 당국이 집단감염 사태 초기에 어떤 정보를 토대로 코로나 유증상자에 대해 격리를 하지 않았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최초 유증상자가 감기에 걸렸다고 보고 격리를 하지 않은 것이 군의관 등 전문가의 소견에 따른 것이라면 과실을 묻기 어렵지만, 전문가의 소견은 물론 유증상자의 징후가 충분히 코로나 감염이 의심되는 데도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아 집단감염으로 확대된 것이라면 국가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배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격리가 되지 않아 코로나 감염이 퍼졌기 때문에, 격리하지 않은 군 당국의 대처와 집단감염의 인과관계는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격리를 하지 않은 오판에 과실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초기 유증상자에 대해 감기로 본 것이 코로나 감염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무시한 것인지, 군의관 등 전문가에 의해 감기로 판명이 났기 때문에 격리하지 않은 것인지 등 사실관계에 따라 배상책임 여부가 갈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천400t급) 장병들이 탑승한 버스가 지난 20일 경기도 이천시 국방어학원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군의관들이 코로나 확진자를 감기에 걸린 것으로 오진했다는 정황도 제기되고 있다.

 

다른 변호사는 "배라는 공간의 특성상 다른 곳보다 감염 위험이 높기 때문에 최우선으로 백신 접종을 하거나 방역에 더욱 신경을 썼어야 한다"면서도 "군의관들이 코로나 감염자를 단순 감기에 걸린 것으로 오진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통상적인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오진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집단감염에 대한 늑장대응까지 국가책임을 인정하게 되면 백신 수급이나 방역대처가 늦어지는 정부의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모두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며 "감기라는 판정을 받고서도 더 의심하거나 혹시 모를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지금 보면 아쉬운 부분이지만, 당시 주어진 정보로만 추가 조치를 하지 않은 것까지 법적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이른바 '슈퍼 전파자'에게 감염된 환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패소한 바 있다.

 

A씨는 2015년 5월 암 추적 관찰 치료를 받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가 14번 환자를 통해 메르스에 감염됐다. A씨는 같은 해 10월 메르스 격리 해제조치를 받고 가족 품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메르스 양성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숨졌다. A씨 유족은 메르스 사태 초기 국가와 병원의 대응이 부실해 A씨가 사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앞선 메르스 환자에 대한 보건당국의 진단검사가 지연됐고 역학조사가 부실했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A씨의 유족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14번 환자에 대한 진단검사와 역학조사가 제때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A씨의 감염을 예방할 수 없었다며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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