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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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침범 부르는 좁은 S자 차로…차단기 울려도 꼬리물기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위험천만 서빙고 북부 철길건널목
서울 용산구 소재 서빙고 북부 건널목에서 관리원 최모(65)씨가 21일 오전 지나치는 열차를 지켜보고 있다

“땡! 땡! 땡! 땡!”

21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용산구 경의중앙선 서빙고역 인근의 서빙고 북부 건널목. 차량에 일시 정지를 알리는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고 경고음이 울리자 근무자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한쪽에서는 일반 열차, 반대편에서는 용산역으로 향하는 KTX 산천 열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경고음이 울리고 1분 가까이 지나자 내려진 차단기는 다시 올라갔다. 대기 중인 차량과 시민이 건널목을 통과하자 그제야 관리원 최모(65)씨는 안심한 듯 옅은 미소를 보였다. 최씨는 옆에서 함께 지켜본 기자에게 “긴장의 연속”이라고 한마디 던지고는 모자를 벗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경찰 출신인 그는 퇴직 후 이곳에서 3년째 근무 중이다.

최씨의 긴장과 우려는 충분히 이해됐다. 약 2년 전 이 건널목에 들어선 승용차가 맞은편에서 온 택시에 가로막히는 일이 일어났다. 경고음이 울리는 와중에 철길에 갇힌 신세가 됐는데, 최씨는 당시 근무조였다.

'한문철 TV 영상 캡처'

◆2년 전 서빙고 건널목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나

2019년 9월20일 오후 9시쯤. 반포대교 북단 방향으로 향하던 차 1대가 서빙고 북부 건널목에서 꼼짝 못 하는 일이 발생했다. 진입금지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 건널목에 들어선 A씨의 차가 맞은편에서 진입하는 택시에 막혀 철길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A씨보다 조금 늦게 진입을 시도한 택시가 그의 진로를 방해한 꼴이 됐다.

놀란 A씨는 계속 경적을 울렸고, 당시 근무자는 택시 쪽으로 다급한 손짓을 보냈다. 택시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차단기가 내려와 상황은 더욱 급박해졌다. 다행히 차단기는 다시 올라갔고, 중앙선까지 차지한 택시와 도로 가장자리 사이로 겨우 비집고 들어가 위기를 벗어난 A씨는 택시기사에게 항의했다. 그러는 사이 용산역으로 향하는 KTX 열차는 조금 전까지 A씨 차가 서 있던 자리를 빠르게 지나쳤다. 차단기가 내려오고 30초 정도 지난 시간이었다. A씨 차가 선로를 탈출(?)한 시간에서 보면 10초 정도 지난 무렵이었다.

이 장면은 A씨 차의 블랙박스에 그대로 담겼다. 공포영화에 버금갈 만큼 보는 이의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한 영상은 교통사고 전문인 한문철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에도 게재돼 조회 수가 14만건을 넘겼다. ‘역대급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택시기사가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한 것 같다’는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그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근무자들은 ‘안전 주의’ 당부

기자는 이날 오전 직접 건널목을 찾아 1시간가량 오가는 차량 등을 관찰했다. A씨가 겪었던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 등이 있었나 확인하려던 터였다.

먼저 택시가 진입했던 차로는 좁은 데다가 ‘S’자로 구부러져 있어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중앙선 침범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문제점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건널목 진입로가 일반 성인의 두 걸음만큼 넓어졌으나, 여전히 중앙선을 침범한 채 건널목에 진입하는 차량이 종종 눈에 띄었다. A씨의 차를 막아선 택시처럼 언제든지 돌변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건널목과 편도 4차로의 넓은 도로가 맞닿은 것도 문제로 보인다. 건널목을 통과한 차는 우회전으로 도로에 합류해야 하는데, 이런 탓에 진입 후 바로 건널목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선로 위에 대기 중인 차가 발견됐다. 이런 상황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차단기가 내려온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건널목 진입 차량의 꼬리물기도 문제다. 현장에서 만난 건널목 관리 관계자는 “이전보다 건널목을 통과하는 차량이 많아졌다”며 “인근을 오가는 차량들의 주요 통로가 되면서 이런 문제가 종종 생긴다”고 털어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널목 관리원들은 꼬리물기가 발생하지 않게 쉴 틈 없이 오가는 차량을 통제해야 했다. 이따금 운전자들의 항의를 받지만, 단속 권한이 없어서 경찰에 연락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결한다고 한다.

땡볕 아래에서 열차를 주시하던 최씨는 “건널목 앞에 그어진 정지선을 반드시 지켜달라”며 “통과 전에는 좌우를 확인하고 꼬리물기가 안 되도록 주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