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설왕설래] 스파이 ‘페가수스’

왕조시대 스파이는 권력자의 통치 도구였다. 이슬람 알 만수르왕의 통치술은 스파이 정치였다. 그는 모든 관리에게 밀정을 하나씩 붙여놓았다. 왕은 먼 지방의 물건 값까지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왕이 천리안을 가졌다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퍼졌다.

청나라 옹정제는 만주 팔기군을 스파이로 썼다. 하루는 왕운금이라는 고관이 친구들과 마작놀이를 했다. 이들은 도중에 패가 하나 없어져 놀이를 중단했다. 다음날 황제가 왕운금을 불렀다. “경은 어제 어디서 무얼 했는고?” 그는 나라에서 금지한 마작을 했다고 사실대로 자백했다. 황제는 정직함을 칭찬한 뒤 상으로 마작패 하나를 주었다. 어젯밤에 잃어버린 그 패였다. 신하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음은 물론이다.

스파이는 국가 간 전쟁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한다. 나폴레옹은 “우수한 스파이 한 명의 가치는 병사 2만명과 같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스파이들의 각축장이나 다름없었다. 연합군의 시칠리아섬 상륙 작전에는 죽은 사람이 스파이로 동원됐다. 1943년 4월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에 영국군 장교의 시체가 스페인 해변으로 밀려왔다. 영국 해병대 윌리엄 마틴 소령이었다. 그의 가방에 든 서류는 독일군에 고스란히 넘어갔다. 비밀정보를 입수한 독일군은 시칠리아 대신 그리스 방어에 집중했다. 그 사이 연합군은 섬에 상륙해 전쟁의 판도를 뒤집었다. 소령의 시체와 정보는 모두 가짜였다. 그는 쥐약을 먹고 자살한 행려병자였을 뿐이다.

21세기 정보화시대에선 해킹 프로그램이 스파이로 활용된다. 각국 정보기관들이 ‘페가수스’라는 스파이웨어를 이용해 세계 지도층 인사 600여명의 휴대전화를 몰래 들여다봤다고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국왕, 총리들도 해킹을 당했다. 이스라엘 보안기업이 개발한 페가수스는 테러 방지 목적으로 각국 정보기관에 수출된 상태다.

페가수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말이다. 하늘을 나는 페가수스는 성질이 난폭해 황금 고삐를 채울 수 있는 사람만이 등에 올라탈 수 있다. 정보화는 양날의 페가수스다. 고삐를 바짝 채우지 않으면 우리가 빅브러더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