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커피 매장이 ‘진동벨’로 주문한 음료가 준비됐음을 알려주지만, 스타벅스는 매장 직원이 고객을 소리 내 부른다. 스타벅스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직원이 지금도 주문한 고객의 이름이나 별명을 컵에 적어놨다가 불러 찾고, 우리나라에서도 별명이나 주문번호로 음료가 주문됐음을 알린다.
여전히 친근함을 표시하기 위한 아날로그적 서비스를 남겨뒀지만, 스타벅스의 서비스는 이미 상당히 디지털화됐다. 스타벅스 이용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저장해 놓고, 매장에 도착하기 전 미리 주문할 수 있으며, 앱으로 결제하고 포인트인 ‘별’은 디지털로 자동 적립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거나 은행을 찾는 대신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계좌이체를 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하고 앱으로 배달 주문을 하는 건 일상이다.
이제 정보기술(IT)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특별한 은둔자가 아니라면 디지털 없는 세상에서 하루를 나기도 어렵다.
‘4차 산업혁명’으로도 불리는 디지털화로 IT 기업이 전 세계의 핵심 산업으로 떠올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디지털 기업 시총 급상승… 산업 규모 커져
디지털의 중요성과 위상은 그간 달라진 기업 지형도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3일 현재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대 기업의 대부분은 디지털 기반 기업이다. 1위는 스마트폰 혁명을 주도한 애플, 2위는 전통의 소프트웨어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다. 4위는 온라인 쇼핑의 대명사인 아마존, 5위는 검색·동영상의 선두주자인 알파벳(구글)이다. 6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지존인 페이스북, 7위는 게임 업계의 큰손인 텐센트다. 모두 강력한 소프트웨어 파워와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세계 10위 기업 중 나머지 두 곳은 디지털 기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역시 IT 산업의 핵심축인 반도체를 생산하는 TSMC(10위)이고, 전통산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 기업은 국제 정유산업의 일인자인 사우디 아람코(3위)뿐이다.
우리나라 역시 디지털 기업이 전통 기업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1일 기준 시총 순위(거래소 개별기업 기준, 우선주 제외)는 △1위 삼성전자 △2위 SK하이닉스 △3위 카카오 △4위 네이버 △5위 LG화학 △6위 삼성바이오로직스 △7위 현대차 △8위 삼성SDI △9위 셀트리온 △10위 기아차다.
아직 전통 기업들이 톱10에 많이 남아있지만, 변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15년 연초 개장 시총 10위를 살펴보면 △1위 삼성전자 △2위 현대차 △3위 SK하이닉스 △4위 한국전력 △5위 포스코 △6위 삼성SDS △7위 네이버 △8위 현대모비스 △9위 제일모직 △10위 삼성생명이다. 그간 현대차의 순위가 떨어졌고, 한국전력이나 포스코 등 전통 기업들은 이제 순위에도 들지 못한다.
6년여간 IT, 그중에서도 디지털 기반 기업의 파워가 강해졌음을 실감케 한다. 톱10에 들지는 않았지만, 게임기업인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이 급성장했고, 넥슨과 온라인 쇼핑 전문기업인 쿠팡은 해외에서 기업공개(IPO)에 성공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디지털 기업의 성장세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빨라지고 있다. 2019년 1월 카카오(당시 다음카카오)의 시가총액은 7조9200억원으로 전체 증시 중 시가총액 비중이 0.59%에 불과했지만, 올해 1월에는 35조20억원으로 1.44%가 됐고, 시총 순위는 33위에서 10위로 뛰었다. 이어 올해 7월1일 기준으로는 시가총액이 71조30억원으로 시총 비중은 2.59%, 순위는 3위가 됐다. 불과 1년 7개월 만에 시총이 10배나 불어난 셈이다. 네이버의 시가총액도 2019년 1월 19조4500억원에서 올해 7월 48조1300억원으로 2배 이상 불어났고, 시총 순위는 12위에서 4위로 바뀌었다.
◆플랫폼 기반 고속 성장… 부작용 우려도 커져
반도체의 집적도가 2년에 2배씩 높아진다는 ‘무어의 법칙’처럼 성공한 디지털 기업들을 보면, 성장에 가속도가 붙는 2차 방정식형 성장 패턴을 보인다. 전통 기업들이 1차 방정식의 직선형 성장세를 나타내는 것과 비교된다.
이러한 고속성장과 경쟁력의 원천으로는 플랫폼이 꼽힌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금융, 운송, 쇼핑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카카오의 종속회사는 2020년 1분기 기준 105개나 된다.
네이버 역시 포털이라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온라인 광고 시장을 개척했고, 쇼핑, 웹툰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 쿠팡, 토스 등이 가세하며 금융·유통·미디어 시장에 판도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업계는 코로나19가 디지털 흐름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극장을 찾는 대신 OTT 기업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식당이나 쇼핑몰을 찾는 대신 온라인 주문을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상거래 카드결제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디지털화에 따른 경제사회 변화 및 대응전략’ 연구에 따르면, 이미 우리나라 전자상거래의 절대적 규모는 세계 5위이고, 전체 소매유통 중 비중은 28.2%로 세계 최고다.
기업공개를 앞둔 카카오뱅크는 1615만명의 고객을 확보한, 중국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고객을 보유한 인터넷 전문은행이다.
2007년 애플이 첫 공개한 아이폰은 혁신의 아이콘이 됐고 이후 디지털 산업은 새로운 시대와 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기업의 급성장으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대 플랫폼의 독점에 대한 경계다.
미국 하원 법사위 산하 반독점소위는 지난해 10월 공개한 ‘디지털시장 경쟁 조사’ 보고서를 통해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의 시장 독점이 혁신을 저해할 만큼 심각하다고 지적했고, 각국은 독점 규제 조치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최저가 판매자의 제품 판매를 우대하는 쿠팡의 불공정 약관을 시정하고, 국회가 ‘구글 갑질방지법’ 입법 절차를 진행 중이다.
디지털 산업 발전에 따른 일자리 논란도 현재 진행형이다.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이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과 기술의 인간 대체로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