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페토로 지민 만들어봤다.”, “나도 방탄 뷔 제페토 만들었다.”
최근 온라인에서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연예인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메타버스는 가상·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기존의 가상현실에서 더 나아가 현실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활동할 수 있는 확장 가상세계를 말한다.
현실에서 다른 사람을 무단으로 촬영하거나 그 사람을 똑같이 묘사해 그림을 그리면 초상권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상 공간인 메타버스에서 BTS(방탄소년단) 멤버와 똑 닮은 캐릭터를 만들어 사용하면 어떨까.
◆10대를 넘어 기업과 정치인까지 메타버스 속으로
‘제페토’는 아바타를 통해 가상 공간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며 놀이·쇼핑·업무 등을 즐기는 서비스다. 제페토의 주 이용객은 10대다. 하지만 최근에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와 소통하고 비대면 시대에 활로를 찾으려는 기업들과 정치인들도 메타버스에 뛰어들고 있다. 이용층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선주자들의 ‘제페토 유세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제페토 맵 ‘이낙연의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에서 지난 16일 팬 미팅을 열었다. 지난달 22일 개설된 이 전 대표의 제페토 맵 누적 방문자 수는 22일 현재 2만명을 넘겼다. 민주당의 또 다른 대선주자인 김두관 의원은 ‘아름다운 독도’ 맵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박용진 의원도 제페토에 ‘박용진 캠프’를 차렸다. 야권에서는 국민의힘 원희룡 제주지사가 ‘업글희룡월드’를 만들어 ‘제페토 민심’ 잡기에 나섰다.
기업들도 MZ세대 직원들과 소통을 강화하려고 메타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제페토에 인천 청라지구에 있는 연수원을 구현해 신입 행원 멘토링 프로그램 수료식을 개최했다. 우리은행은 ‘메타버스 타고 만나는 WOORI-MZ’ 행사를 열었다.
◆허락 없이 타인과 똑같이 생긴 캐릭터를 만들었다면?
메타버스에서 이용자들은 또 다른 ‘나’로 활동할 아바타를 만들고 꾸미며 톡톡 튀는 개성을 뽐낸다.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만들 수도 있지만 유명 연예인을 본뜨는 등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아바타를 생성할 수도 있다. 유튜브에서는 ‘제페토 커스텀’(Customize·원하는 대로 만드는 것)을 주제로 특정 연예인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보여주는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특정인과 똑같이 생긴 아바타를 만들어 이용하면 자칫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
법조계에선 가상공간의 캐릭터를 보고 특정인이 연상될 정도로 캐릭터와 실제 인물이 유사하다면 초상권 침해가 적용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정치인 등 공인의 경우에는 공익성을 따져봐야 한다.
현행법상 초상권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은 없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초상권을 인격권의 일종으로 인정하고 있다.
“초상권은 우리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해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기타 사회 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 또는 그림 묘사되거나 공표되지 아니하며 영리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대법원(2004다16280)
초상권을 침해했는지를 판단할 때 목소리와 외형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메타버스에서는 3차원 캐릭터가 사용되기 때문에 실제 사람과 더 유사하게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이 캐릭터가 외부에 있는 특정인과 동일해 보인다면 초상권 침해 가능성도 커진다.
손승우 중앙대 교수(산업보안학과)는 “초상권은 인격권이어서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비슷한 얼굴을 쓰게 되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그 사람의 특성,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느낄 수 있는 목소리나 독특한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치인 등 공인이나 유명인을 따라 한 경우에는 공익성과 영리적 활용 여부 등에 따라 법적 다툼의 여지가 클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이근우 변호사(법무법인 화우)는 “대선주자 등 정치인과 닮은 캐릭터를 만드는 건 공적 사용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고, 연예인도 단순히 패러디로 활용하는 경우라면 상황에 따라 책임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그 캐릭터를 자기 이익을 위해 활용하려고 하는 목적성이 클수록 권리를 침해했다고 볼 여지도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인은 공인인 만큼 이용자가 캐릭터로 경제적인 이득을 봤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정열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공인이라면 초상권 침해의 여러 부분이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캐릭터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어떤 경제적인 이득을 취한다고 하면 또 다르게 법적 다툼을 이어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인격권으로 다룰 수도 있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거면 부정경쟁방지법상으로도 다퉈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상권을 침해받았다면 민법 제750조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민법 제750조는 불법행위에 관한 법률로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손 교수는 “초상권은 인격권이어서 행위 자체를 금지하거나 정신적인 피해를 보상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일반인이면 위자료를 산정하는 데 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인격권 침해로 손해를 봤으니까 이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질 것이고, 유명인이라면 보통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득을 계산해서 손해배상액을 결정한다”고 했다.
◆메타버스의 캐릭터를 무단으로 올렸다면?
메타버스의 캐릭터를 영상 혹은 사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무단으로 올리면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다. 저작권법 제46조 2항에 따라 개인은 저작권자에게 허락받은 범위 안에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저작권법은 개인이 사적 목적으로 저작물을 단순 복제하는 것은 허용한다. 다만 이를 공개해 게시하거나 영리활동에 이용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최 변호사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사람한테 창작자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 캐릭터의 상징적 특징을 찍어서 올리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며 “과거의 싸이월드와 같은 가상 공간에서의 저작권 문제와 마찬가지로 메타버스는 좀 더 리얼한 환경이라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저작권 침해 문제는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스크린 골프장이 실제 골프장 설계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골프장 모습을 가상현실로 만들어낸 걸 저작권 침해라는 취지로 인정한 판결도 있다”며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20년 3월 스크린 골프 업체인 주식회사 골프존이 골프장 운영업체 허락 없이 실제 골프장 모습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낸 것에 대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골프장의 골프코스를 설계자의 저작물로 인정한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골프코스는 설계자의 저작물이기 때문에 골프장 운영업체는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면서 “골프존의 행위는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